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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이재용과 신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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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이재용과 신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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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해야 할 사람은 했다고 하는데 마땅히 받아야 할 사람은 받지 않았다고 한다. '당연히'와 '마땅히'의 부조합. '사과(apology)'다. 어원을 보면 'apo(away, defence)'와 'log(speech)'가 결합해 '멀리 떨어져서 방어하려고 말하다'는 뜻에서 파생했다. 태생적으로 사과는 자기 방어 심리가 내재돼 있다. 사과를 하는 사람과 사과를 받는 사람의 '감정적 밀착'이 헐거우면 "했다"와 "받지 않았다"는 뒤틀림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사과를 한다는 것은 '사과를 하는 법'의 올바른 체득과 실천을 의미한다.


첫째, 사과를 할 때는 변명을 하지 않는다. "저로 인해 상처를 입었다면" "혹시 불쾌하셨다면" 따위의 표현은 책임회피의 알리바이만 남긴다. 법정에서의 자기방어가 아니라면 사과는 어떤 유보도 허락하지 않는다. "사과를 변명으로 망치지 말라(Never ruin an apology with an excuse)." 최고의 금언이다.

둘째, 구체적이어야 한다. 무엇(What)과 어떻게(How)에 대한 언급은 자신의 과오에 대한 깊은 각성과 회개를 상대에게 보여준다.


셋째, 재발 방지를 약속한다. 첫째와 둘째의 완성도를 높이는 필수조건이지만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이기도 하다.


이들 조건에 비춰보면 최근 목격한 두 개의 사과는 출발부터 엇갈렸고 종착역도 달랐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534자 사과문'은 첫째, 둘째, 셋째를 모두 갖췄다. 그는 '사죄합니다' '죄송합니다' '책임을 통감합니다'를 반복하면서 일말의 변명도 하지 않았다. 무엇이 잘못됐는지도 언급했다. "메르스 감염과 확산을 막지 못해…" 재발 방지도 약속했다. "진료환경을 개선하고 부족했던 음압병실도 충분히 갖춰서…" 반면에 신경숙 작가는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미흡했다. "표절이란 문제 제기를 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표현은 비겁했고 "임기응변식 절필 선언은 할 수 없다"는 대안은 고집스럽게 비쳤다. 이 부회장은 잃은 것을 만회했지만 신 작가는 잃은 만큼 더 잃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를 당혹스럽게 하는 것은, 사과를 해야 할 당사자가 사과를 받는 장면이다. 청와대 인사 참극 때도, 세월호 참사 때도, 메르스 사태 때도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고개를 숙이는 데 인색했다. 스스로를 책망해야 할 대통령이 측근을 나무라고 병원장을 꾸짖는 모습은 기형적이고 비현실적이었다. 진정한 사과와 반성은 '위대한 힘'을 필요로 한다. 비겁하면 사과도 못 한다.








이정일 금융부장 jaylee@asiae.co.kr<후소(後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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