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년간 국정을 맡아 제나라를 춘추시대 최강국으로 만든 관중이 병석에 누워 일어나지 못하자 제환공은 후사를 누구에게 맡길 것인지 물었다. 가장 먼저 제환공은 포숙이 어떠냐고 물었다. 포숙은 관중과 함께 '관포지교'란 고사성어를 만든 주인공이다. 목숨을 잃을 처지였던 관중을 제환공에게 추천해 재상을 맡게 한 이가 포숙이다. 관중에게는 '절친'을 넘어 '은인'인 사람이다.
그런데 관중은 포숙은 재상감이 아니라며 다른 이를 추천한다. 관중은 "포숙은 군자입니다. 천승의 나라라도 도에 어긋난다면 받지 않을 인물입니다. 사람됨이 좋아함과 싫어함이 분명해 굽힐 줄 모릅니다. 그래서 직접적인 정치를 담당할 수 없습니다"라며 습붕을 천거했다.
재상이 상황의 변화에 따라 융통성 있게 굽힐 때 굽히고, 주장할 때 주장할 줄 알아야 나라가 편안한데 포숙은 너무 엄격해 재상 일을 맡기 어렵다는 게 관중의 생각이었다.
메르스 사태가 한창인 와중에 박근혜정부 세 번째 총리가 임명됐다. 새로 임명된 황교안 총리는 현 정부 들어 유난히 중용되고 있는 검찰 출신이다. 직전 보직도 검찰을 관할하는 법무부 장관이었다.
이 때문에 야당은 물론 여당 일각에서도 공안 정국을 만들지 말아 달란 말이 나올 정도로 정부와 국회 간 경색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가뜩이나 '불통'이 문제라는 인식이 만연한 상황에서 정치력보다는 엄정한 법 집행을 강조하는 새 총리 임명은 소통보다는 지금까지 기조를 밀어부치겠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박 대통령은 황 총리에게 "총리가 사회개혁과 부정부패 척결의 사령탑이 돼야 한다"고 지시했다. 황 총리 발탁이 사정 드라이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임명장을 주면서도 "메르스로 인해 내수가 위축되는 등 메르스 사태의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해야 한다. 국민 불안을 야기하거나 혼란을 가중시키는 행위에 대해서도 엄정 대응해 달라"고 거듭 '유언비어' 단속 등을 주문하기도 했다.
사회개혁과 부정부패 척결은 중요한 일이다. 메르스 사태를 악화시키는 유언비어도 막아야 한다. 하지만 이게 국정을 총괄하는 총리의 역할일까.
관중이 포숙 대신 습붕을 추천하고 죽은 해가 기원전 645년, 지금으로부터 2660년 전이다. 청와대와 황 총리가 관중의 유언을 너무 오래된 옛 이야기로 치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전필수 증권부장 phils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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