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27년 전 '88올림픽' 즈음에 저잣거리를 떠돌던 루머다.
198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둔 어느 날, 노태우씨가 용하다는 점쟁이를 찾았다. "어떻게 해야 대통령이 될 수 있겠소." 점쟁이가 영험한 표정으로 엄숙하게 말했다. "전 국민의 가정에 불상을 놓으시오." 노태우씨의 머리가 샛노래졌다. 전 국민? 불상? 참모들이 머리를 맞댔다. 얼마 뒤 기막힌 묘책이 나왔다. '10원짜리 동전에 불상을 새겨넣자.'
루머의 진위를 떠나 1987년 노태우씨는 대통령에 당선됐다. 시간이 흘러 1995년 11월2일, 한국은행에 청원서 하나가 홀연히 접수됐다. 10원짜리 동전에 새겨진 불상을 빼달라는 내용이었다. 한국은행은 즉각 해명했다. 10원짜리 동전에 조각된 것은 불상이 아니라 '돌사자상'이고 1983년 화폐규격 제도 개선의 일환으로 10원짜리 동전에 실제 다보탑과 돌사자상을 재현한 것이라고. '10원짜리 동전 불상' 루머는 그렇게 일단락됐다.
모름지기 권력자를 정점에 둔 루머는 입에 착착 감기는 법이다. 이번에는 '안심'이다. 가계부채의 건전성을 높인다는 취지로 금융당국이 '안심전환대출'을 선보인 것은 지난 3월24일. 이어 '안심주유소'와 '안심병원'이 꼬리를 물었다. 정부의 '안심 3종 세트'다. 그 안심(安心)의 안(安), 그러니까 '집에 여자가 앉아 있는' 글자에서 마침내 또 하나의 루머가 잉태된다. '집'과 '여자'가 '청와대'와 '박근혜 대통령'으로 치환되면서 안심대출과 안심주유소와 안심병원은 박근혜 대통령(의 치적)을 염두에 둔 정책이며, 女가 들어가는 정책은 이 정권과 궁합이 잘 맞는다는 내용이다. 실은 안심대출의 성공으로 주유소와 병원이 '안심'이라는 이름을 차용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지만, 대중은 음모론적인 '안심 3종 세트'에 더 솔깃하다.
세계적인 루머 전문가 니콜라스 디폰조 박사에 따르면 사회가 불안하고 소통이 차단될수록 루머가 창궐한다. 루머가 유통되는 계층과 루머가 겨냥하는 계층은 또한 적대적이고 대립적이다. 대중은 루머를 통해 더 많이 가진 자들의 위선과 교만을 한껏 조롱한다. 그런 점에서 '10원짜리 동전 불상'은 민주주의의 가면을 쓴 군사 정권에 대한 야유였다. 정당하지 못한 권력에 대한 비웃음이었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안심 3종 세트' 루머도 도긴개긴이다. 불신과 불통과 불안의 '3불(不) 권력'에 위로받지 못하는 대중의 신랄한 풍자랄까. 루머는 그 사회의 '신뢰 리트머스'다. '루머사회'는 씁쓸한 우리의 자화상이다.
이정일 금융부장 jaylee@asiae.co.kr<후소(後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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