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공단'은 미술과 영화의 경계에 있는 작품", 하반기 개봉 예정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제 어머니는 40년 가까이 봉제공장의 '시다'로 일하셨습니다. 여동생은 백화점 의류매장과 냉동식품 코너에서 일했고, 형수님은 보험설계사로 감정노동자로 살고 있습니다. 이런 삶을 옆에서 지켜본 것이 작품의 계기가 됐습니다. 우리 사회가 있기까지 숨어서 일하셨던 여성분들에게 조금이라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영화 '위로공단'(Factory Complex)으로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한국인 최초로 은사자상을 수상한 임흥순(46) 감독은 14일 서울 동작구 아트나인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삶과 일터에서 신념을 지니고 살아오신 여성분들을 향한 감사와 위로의 뜻으로 작품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의 이런 마음은 95분 분량의 작품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1960~70년대 육체노동자들, 1980년대 이후 서비스 및 감정 노동자들, 지금의 캄보디아·베트남 등 이주노동자들까지 카메라는 다양한 여성 노동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아시아 여성의 노동 실태를 관객들이 대면하도록 한다.
임 감독은 "금천 예술공장 레지던시에 2년간 머물면서 구로공단 지역에 대해 돌아볼 계기가 있었고, 그 때 '그 많던 구로공단 공순이가 어디로 갔을까?'하는 의문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 질문의 답을 구하는 과정이 '위로공단'의 시작이 된 셈이다. 총 65명의 사람들을 인터뷰했고, 그 중 22명의 증언을 영화에 담았다. 인터뷰에 응한 사람들 중 남성은 1970년대 '동일방직 사건'을 촬영한 사진가 한 명 뿐이다. 그는 당시 파업한 여성 노동자들에게 똥물을 끼얹은 사진을 현상하면서 한참을 울었다고 회상했다. 2012년 8월부터 2년간의 촬영 끝에 임 감독은 "결국 그 구로공단 공순이들이 우리 어머니들이었고, 여동생이었다"는 결론을 내린다.
지난 9일 개막한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위로공단'의 수상은 여러모로 파격적이었다. 영화와 미술의 경계에 있는 이 작품은 이번 비엔날레에서 미술 작품으로 인정받아 전시장 내에서 이례적으로 전편이 상영될 수 있었다. 또 은사자상의 경우, 35세 미만 젊은 작가를 선정하는 관례를 깨고 심사위원단은 40대의 임 감독에게 지지를 보냈다. 베니스 비엔날레 조직위 측에서는 수상을 전혀 예측하지 못한 임 감독이 조기귀국을 준비하자 시상식 전날 전화를 걸어 만류했다고 한다. 그는 "나이지리아 출신의 오쿠이 엔위저(51) 씨가 비엔날레 총감독을 맡았는데, 항상 이 사회에 예술이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해 고민하는 분이었다. 지난 12월에 만나서 이 영화 이야기를 하자마자 자신이 생각하는 주제와 잘 맞는다며 비엔날레에 초청했다"고 말했다.
임 감독은 제주 4.3사건과 최근의 강정 마을 이슈를 다룬 다큐멘터리 '비념'을 2012년 첫 영화로 선보였다. 두번째 작품인 '위로공단' 이후로는 "여성의 시각으로 전쟁을 다룬 작품"을 준비 중에 있으며, '비념' 속편도 제작할 계획이다. 국내 관객들을 위해 '위로공단' 역시 오는 하반기 중 개봉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최대한 많은 분들이 작품을 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입는 옷, 신발, 이런 것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영화를 보면서 한번쯤 생각해볼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취업준비생이나 30~40대 여성들이 자기 자신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 됐으면 합니다."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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