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 유배 원인은 군복의 약한 주석단추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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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들의 대출 순위 최상위권을 꾸준히 차지하고 있는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역작 <총, 균, 쇠>를 읽다보면 스페인의 학살자 피사로의 이야기가 눈에 띈다. 1532년 황금에 눈이 멀어 아메리카 대륙으로 떠난 피사로가 이끌었던 부대는 기병 62 명, 중무장 보병 106 명, 그리고 몇 자루의 화승총이 전부였다. 나무 곤봉과 돌팔매로 무장한 대륙 최강 잉카제국 아타우알파 황제의 정예(?) 병사 8만 명은 이들 168 명의 스페인 병사, 그나마 노다지를 좇아 합류한 오합지졸들에게 속절없이 무너졌다. 짱돌과 쇠칼의 대결이었던 까닭이다.
기술, 환경, 문명이 정복과 피정복의 운명을 바꿨다는 것이 재레드 주장의 전부인데 결국 총을 만든 쇠가 세 가지 중 으뜸이다. 원소기호 Fe인 쇠는 철이라고도 하는데 산소, 규소, 알루미늄 다음으로 많이 존재한다. 석기시대 이후 인류는 구리와 주석(청동기)에 이어 최종적으로 쇠(철기)를 누가 먼저 알아봤느냐에 따라 지배와 피지배로 갈리며 오늘에 이르렀다.
화폐전쟁의 역사를 다룬 융이의 <백은비사>에 따르면 피사로 덕분에 은이 넘쳤던 스페인은 그은 때문에 인플레이션으로 몰락했고, 영국이 중국을 상대로 일으켰던 아편전쟁도 중국인의 안방에 숨은 막대한 은을 끄집어 내기 위한 영국의 비책이었다. <금속의 세계사>에서는 은을 제련하는 기술로는 조선 연산군 때 함경도 단천의 김감불, 김건동이 개발한 ‘단천연은법’이 으뜸이었는데 이 기술을 넘겨받은 일본이 은을 유럽에 판 돈으로 임진왜란을 일으켰다며 아쉬워한다.
우리는 흔히 금속의 2대 제왕으로 ‘금과 은’을 생각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탐욕에 따른 것일 뿐 실제는 ‘철과 주석’이다. 그 중 주석이 참 흥미로운 금속이다. 매장량은 희토류만큼 귀하되 고대로부터 일상의 쓰임새는 무진장 넓었다. 영국을 향해 대륙봉쇄령을 내린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이 실패한 이면에는 모스크바의 추위에 쉽게 부숴지는 프랑스 군복의 주석 단추가 있었다. 주석이 결국 나폴레옹을 세인트헬레나 섬으로 유배시켰던 것이다. 아문젠과의 남극 탐험을 다투었던 스콧의 비극 역시 추위에 부숴진 연료통 주입구의 주석이었다.
<금속의 세계사>는 이렇게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인류 역사에 큰 획을 그은 7 가지 대표 금속인 ‘구리, 납, 은, 금, 주석, 철, 수은’을 매개로 살펴본 세계사의 ‘이모저모’를 다뤘다. 무식한 사람이 용감하게, 열심히 하면 참으로 위태롭다. 납과 수은이 그랬다. 로마인들은 납을 숟가락으로 떠먹다시피 했고, 진시황은 수은을 불로장생의 비책으로 알았다. 그러나 수은은 수많은 연금술사들을 죽음로 내몰았는데 여기에는 ‘신이 인간에게 보낸 선물’이었다는 아이작 뉴튼도 오르내린다.
우리나라 역시 근대화 시기 여성들의 선풍적 인기를 누렸던 화장품 ‘박가분’이 납 파동을 일으켰는데 지금도 ‘미백과 트리트먼트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화장품’이란다면 일단 수은을 의심해 봐야 한다. 일본에서 ‘미나마타병’을 일으켰던 원인이 수은을 축적한 생선이었던 바 멸치 포식자 황새치는 요주의 생선이다. 수명이 다 된 형광등 안에는 수은이 꽉 차있다. 안전하게 분리수거해야 하는 이유다. (금속의 세계사 / 김동환, 배석 / 다산에듀 / 1만 6천 원).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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