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정부는 소기업지원제도의 참여기준이 되는 소기업범위 기준을 내년 1월부터 기존 상시근로자 수에서 3년평균 매출액 기준으로 전면 개편한다고 발표했다. 올해부터 중소기업 범위 적용기준이 종전 상시근로자, 자본금, 매출액 등에서 매출액 기준으로 단일화된 것에 대한 후속조치로 소기업 범위도 중소기업 범위와 동일하게 매출 기준을 적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1982년 이후 상시근로자 수로 소기업을 판단하던 기준이 35년 만에 변경돼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데도 이해관계자인 중소기업의 의견을 최대한 정책추진에 반영하겠다는 의지보다는 기준변경에만 목적을 두고 지나치게 서두르고 있어 우려가 앞선다.
우선 정부는 지원 혜택 유지를 위해 추가 고용을 기피하는 중소기업의 피터팬 증후군을 기준 개정의 주요 사유로 제시하고 있는데 그 근거는 26만개 소기업, 중기업 중 315개사가 매출이 증가하였음에도 상시근로자 수가 축소되었다는 것이다. 근로자 변동 사유에 대한 면밀한 조사 없이 이들 기업 모두를 피터팬 증후군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315개사는 26만개 소기업, 중기업의 0.12%에 해당할 뿐인데 이를 증후군이라 규정하고 정책 수립의 근거로 제시하는 것은 지나친 과장이 아닌가 생각된다.
정부안대로라면 이제 기계 등 제조업 분야에서 매출액 80억원 이상의 제조업체는 중기업으로 분류가 되는데 자동화, 수익률 감소, 원자재 가격 상승 등으로 종업원 1인당 매출액이 3억원 이상이어야 기업 유지가 가능한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이는 지나치게 엄격한 기준이라는 생각이다.
필자를 비롯한 중소기업인들은 수차례의 공청회 및 간담회에 참여해 기업 경쟁력을 확보하고 자생력을 갖추기 위한 연구개발(R&D) 투자 등을 위해서 소기업 범위 매출 기준을 200억원 이상으로 상향 조정해줄 것을 요구해왔다.
기업은 하나의 생명체와 같아서 끊임 없는 성장을 추구한다. 정부에서 주장하는 피터팬 증후군 업체를 제외하더라도 99.88%의 업체는 소상공인에서 소기업으로, 또 소기업에서 중기업으로 회사를 성장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기업 성장사다리의 발판 간격이 너무 넓으면 오르기 힘들고 성장은 무뎌지게 마련이다. R&D 투자의 여력도 없는 소기업을 인위적 기준 개편을 통해 중기업으로 분류한다면 기업은 성장 동력을 상실하고 정체되거나 도태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정부의 통계 채택 방식으로, 중소기업 범위 기준 개편 시에는 경제총조사 통계를 채택한 적이 있는데 소기업 범위 개편 시에는 기업생멸 통계라는 비공개 통계를 채택해 정책의 연속성 결여가 우려된다. 정부도 통계 채택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였는지 기업 수를 540만개로 보는 기업생멸 통계를 사용했음에도 발표 자료에는 마치 경제총조사 방식을 사용한 것처럼 기업체를 335만개로 기재해 혼선을 초래하고 있다.
이러한 불분명한 발표내용은 정책 수립 및 검증 과정에 대한 불신과 함께 정책 개선을 수반하지 않고 소기업 범위 기준의 인위적인 조정을 통해 중기업의 숫자를 증가시켜 마치 정부의 기업 성장 지원 정책이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오인하게 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또한 소기업 범위 기준의 개편으로 소기업에서 중기업으로 분류되는 기업들은 특별세액감면, 공장설립 시 개발부담금 면제, 정책자금 지원 등에서 제외돼 많은 기업들이 사실상의 증세 조치로 받아들여 동요하고 있는 상황이다. 연말정산 사태에 이어 중소기업에 대한 증세까지 서민들에게 무거운 짐을 하나 더 얹는 것은 민심의 이반을 가속화할 것이다.
중소기업인의 한 사람으로서 정부가 피터팬 증후군이라는 실체 없는 허상에 사로잡혀 중소기업을 규제의 대상으로 간주하지 말고 열심히 일하는 중소기업들이 꾸준히 성장할 수 있는 실질적인 기업 성장사다리 구축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정부의 소기업 범위 기준 개편은 무조건 서둘 것이 아니라 이해관계자인 중소기업의 의견을 최대한 수렴해 반영해주길 기대한다.
구자옥 한국기계공업협동조합연합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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