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최고 명문대 중 하나가 사립 게이오대학이다. 게이오는 와세다와 더불어 일본 사학의 양대 산맥을 이룬다. 게이오는 우리의 연세대와 비슷한 학풍으로 와세다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유한 학생이 많으며 하시모토 류타로,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수상 같은 유명 정치인을 배출한 명문이기도 하다. 명문 대학이기 때문에 입학도 무척이나 어렵기로 유명하다. 특이한 점은 유치원에서 대학까지 일관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치원에서 초중고를 거쳐 대학까지 게이오 계열을 이루고 있어 유치원에 입학하면 거의 자동적으로 대학까지 진학이 가능하다.
당연히 게이오대학 입학을 위한 가장 어려운 관문이 유치원 입학이다. 게이오유치원은 평균 20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한다. 입학시험 역시 특이하다. 2009년도 입학시험 문제는 운동장에 마쯔리(축제) 분위기를 연출한 가운데 지원자들이 자유로이 놀게 하는 것이었다. 시험관은 자유분방하게 노는 어린이들을 관찰하고 평가한다. 물론 평가의 기준은 있다. 놀이에 얼마나 열중하는가, 다른 어린이를 이끄는 리더십은 어떤가를 평가한다.
더 재미있는 사실은 게이오유치원 '입시'를 위한 사설 학원들이 번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 해에는 면접 문제로 '부모와 요리를 한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이 나왔다. 정답은 '어느 날, 몇 시에 엄마는 만두피를 만들고 나는 만두소를 만들어 솥에 넣었다'는 구체적인 대답이었다. 다음 해 입시학원은 한 달 전부터 어린이와 부모를 모아 만두를 함께 만드는 실습을 시켰다. 웃지 못할 해프닝이다.
교육부가 인성교육진흥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인성 수준 측정은 70개의 인성문항을 활용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인성지수는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학생의 답변을 토대로 정직, 배려, 자기조절 등 10개 항목별로 인성을 점수화한다. 2017년부터는 대학입시에 인성평가를 대폭 강화한다고 한다.
무슨 골프나 양궁도 아닌 인성을 점수화한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한국적 발상'이다. 인성은 지식의 요소가 아니라 지극히 정서적이고 감성적인 요소이다. 사회적인 요소가 다분히 깔려 있기도 하다. 예를 들어 미국이나 일본에서 '유 아 라이어'나 '아나타와 우소츠키'(이상 '당신은 거짓말쟁이야'라는 뜻)와 같은 정치적 비난은 상대방에 대한 치명적인 공격이지만 한국 사회는 그렇지 않다. 1974년 미국 37대 대통령이었던 닉슨은 민주당을 도청하고도 관련이 없다는 거짓말로 일관하다 결국 사임했다. 그러나 한국의 정치인들은 수많은 거짓말을 하고도 생존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한국의 교육 과정 역시 편법이 난무하고 있다. 미국의 수능시험인 SAT 문제를 훔쳐 팔고 있는 곳이 한국이며 이 문제를 사서 고득점을 올리는 학생 역시 한국인이다. 미국 주재원으로 나간 지인은 실제로 이 고민을 나에게 털어놓은 적이 있다. 한국인 브로커가 접근해 SAT 만점을 보장하겠다고 유혹했다는 것이다. 어떻게 문제 입수가 가능하냐고 했더니 바로 미국 동부와 서부의 시차였다. 동부에서 먼저 본 SAT 문제를 빼내 서부의 학생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한국의 대학도 입학사정관 제도를 도입하고 있지만 여기에 필요한 봉사를 부모가 대신해 주는 경우가 많다.
이런 사회적 상태에서 인성지수 평가는 사회적 현실과 유리된 또 하나의 '허수'일 뿐이다. 게이오유치원의 입시처럼 실제로 부모와 요리를 만든 적이 없는 어린이가 시험에서는 만두를 함께 만들었다고 대답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번에 도입되는 인성평가는 또다시 '인성교육을 위한 학원'을 만들어 낼 것이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이런 유형의 문제는 이런 것이 정답이라는 교육을 시킬 것이다.
인성은 사회의 거울이다. 배려심 깊은 성실한 사람이 높게 평가받는 사회에서는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좋은 인성을 갖추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인성은 결과물인 것이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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