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가해자할 것 없이 불복…소송 늘어
[아시아경제 박준용 기자] 학교폭력자치위원회(학폭위)의 결정에 불복해 소송을 내는 학부모와 학생이 늘고 있다. 학폭위의 결정이 형평성과 전문성을 잃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서울행정법원에 따르면 학폭위에 불복해 학교를 상대로 학생과 학부모가 낸 행정소송은 2012년에는 한 건도 없다가 2013년 11건, 지난해 11건으로 늘었다. 법원 관계자는 "이 중 원고 (가해자, 피해자)의 주장이 받아들여지는 경우도 상당 수 있다"고 전했다.
학생과 학부모가 학폭위의 결정을 신뢰하지 않고 소송을 내는 까닭은 심사기준이 불투명해 학교마다 징계수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실제 사례로 보면, 경기도와 서울의 모 초등학교에서 내린 처분이 크게 대조된다.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 학생의 경우 개조한 비비탄 총을 학우에게 쏴 이를 부러뜨린 사건에서 학폭위에 회부됐다. 하지만 이 학교 학폭위는 이 사건이 '안전사고'라는 이유로 가해학생에게 아무 징계처분도 하지 않았다. 반면 서울의 한 초등학교 학폭위는 '인간 피라미드'를 만들어 익살스러운 사진을 찍으려다 몸으로 학우의 손가락을 눌러 골절시킨 학생에게 '특별교육 5호'조치를 내리기도 했다. 이는 중징계로 졸업 후 2년간 생활기록부에 등재되는 조치다. 어떤 학교의 학폭위가 판단하느냐에 따라 처벌수위가 판이하게 다른 셈이다. 학폭위 전문 전해일 행정사는 "학폭위가 작은 것에도 징계를 내리는데 이것이 기준이 불명확해서 학교마다 다르고, 이 때문에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불복하는 경우가 많다. 학폭위가 열리면 그 학교의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경향도 있다"고 전했다.
학폭위가 절차상 오류를 범해 학생과 학부모가 불복하고 행정소송을 내는 경우도 있다. 이 때 오류가 입증되면 학폭위 결정 자체가 무효가 된다. 서울행정법원에서 지난달 선고된 판결을 보면 서울의 한 중학교 학폭위는 가해자가 다수인 사건에서 어떤 행위가 누구에 의해 이뤄지는지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징계처분을 내렸다. 법원은 이에 대해 "행정구제절차로 나가는 데 큰 지장을 초래했다"면서 학폭위 결정이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같은 달 서울의 또 다른 중학교 학폭위는 가해학생과 그 부모에게 회의를 열기 전에 논의의 내용을 알려주지 않고 회의 개최 사실만 통보했다. 징계를 받은 학생과 부모는 "방어의 기회가 없었다"며 행정소송을 냈다. 법원은 "절차적 하자로 처분이 위법하다"며 가해학생 측의 손을 들어줬다.
일부 전문가들은 학폭위가 불신의 대상이 된 까닭을 위원 구성에서 찾고 있다. 현재 학폭위 위원은 학부모가 과반을 맡고 있다. 나머지 자리는 학교 교감, 학생지도 교사, 법조인, 경찰공무원, 의사, 청소년 전문가 등이 메우고 있다. 학폭위 전문 이정엽 행정사는 "학부모 위원이 많아 폭력 가해자와 피해자 부모의 영향을 받을 수 있고, 법조인, 경찰공무원, 의사 등의 경우에는 외부인이라 학교 사정에 어두울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 때문에 지난 2013년 정우택 새누리당 의원은 학폭위 구성을 바꾸는 개정안을 냈지만 이 또한 '미봉책'이라는 지적이 있다. 정 의원의 안은 전체 위원 5 ∼10명 중 학부모의 비율을 '과반수'에서 '1인 이상'으로 낮추는 방안이다. 하지만 이 안은 어떤 외부인을 어떤 식으로 참여시킬 것인지를 놓고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다. 교육당국 관계자는 "전문가들이라고 해서 정답인 것은 아니다"고 반박한다. 더구나 이 개정안은 법안 소위에 계류된 상황이다.
아예 관할 지방자치단체가 지역 학폭위를 통합해 관리·운영하자는 대안도 나온다. 이정엽 행정사는 "지자체에의 학교폭력 전담 선생님이나 전문 변호사, 장학사들이 모여 매월 정기 회의를 열어 처분을 결정하면 학교마다 학폭위 처분이 다르다는 우려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박준용 기자 juneyo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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