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경호 기자]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가 인사청문회 준비 초반부터 몸을 낮추는 '정중동(靜中動)' 모드에 들어갔다.
이 후보자는 26일 오전 서울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에 차려진 집무실로 출근하는 길에 기자들로부터 질문공세를 받았으나 짧게 답변한 뒤 후보자 집무실로 들어갔다. 지난 23일 지명 직후와 24, 25일 후보자 집무실에서 언론에 자신과 가족을 둘러싼 여러 의혹에 적극 해명한 것과 180도 다른 모습이었다.
이 후보자는 지명 직후 "대통령에 직언하겠다"고 밝히면서 헌정 사상 최초의 '책임총리' 실현 가능성에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이 후보자는 이날 책임총리로서 권한을 어떻게 행사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받고 "책임총리란 말이 법률 용어는 아니고 정치적 용어"라면서 "헌법과 법률에 규정된 총리의 권한을 행사하겠다"고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정홍원 국무총리와 후속 개각에 대한 준비 작업이 진행 중인가에 대한 질문,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비대위원장과의 개헌에 대한 합의 사실 여부 등에 대해서도 "나중에 얘기하겠다"며 언급을 삼갔다. 이 후보자 측은 이날부터 출퇴근 시간을 공개하지 않고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서도 가급적 답변하지 않기로 했다.
이 후보자의 이 같은 정중동 전략에 대해 정치권과 총리실 안팎에서는 두 가지 해석을 내놓고 있다. 하나는 지명 처음부터 한 '직언총리' '책임총리'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이 정치적 부메랑으로 돌아올 가능성을 염두에 뒀고 다른 하나는 제기되는 의혹에 건별로 대응했다가 실패한 전철을 밟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책임총리의 경우 이 후보자의 말대로 법률상 용어는 아니다. 총리 인사청문회 때마다 단골 메뉴가 된 책임총리는 헌법에 보장된 장관 제청 및 해임권의 행사 여부가 핵심이다. 총리의 경우 법률상 권한은 갖고 있지만 현재의 제왕적 대통령제하에서 총리가 각료제청권을 행사하는 경우는 극히 예외적이었다. 정홍원 총리도 명목상으로는 각료제청권을 행사했고 드물게 윤진숙 전 해양수산부 장관에 해임 건의를 했지만 실질적 권한을 행사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 부호가 따라다닌다. 박근혜 대통령이나 청와대 비서실장 등과의 교감이 없을 경우 이 후보자 스스로 직언총리, 책임총리가 되기는 무리라는 지적이다.
정부 관계자는 "총리는 법적 권한을 행사하면 되는 것이지 책임총리라는 프레임에 빠지면 오히려 대통령을 보좌하는 총리가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고 그런 빌미를 줄 수도 있게 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이 후보자는 책임총리 대신 소통형, 통합형, 화합형 총리의 모델을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 실질적인 책임총리제가 구현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 후보자의 경우 충청 출신에 여야는 물론 지역적으로도 호불호가 갈리지 않는 무난한 인물이라는 평이 주를 이룬다. 박 대통령이 집권 초반에 내세운 대통합, 대탕평의 기치에도 부합하고 지방경찰청장, 국회의원, 도지사, 집권여당 원내대표 경험은 국가개조 작업과 공직개혁이 추진에도 적임자라는 평이다.
각종 의혹이나 현안에 대한 대응을 자제하고 인사청문회 준비에만 몰두하기로 한 것도 고도의 전략으로 풀이된다. 정 총리의 사의 표명 이후 안대희ㆍ문창극 두 전임 지명자의 경우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직접 나서서 해명하는 바람에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온 것으로 분석된다. 두 번의 연이은 낙마를 경험한 총리실도 이번 인사청문회에는 사활을 걸고 대비하는 등 각오도 남다르다는 후문이다.
이경호 기자 gung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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