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추워진 날씨로 얼어버린 길을 조심조심 걷습니다. 빙판 위에서도 재잘거리며 뛰는 아이들을 보니 살짝 부럽습니다. 한 해가 저물고, 또 덧없이 나이를 먹는다는 아쉬움 탓일 겁니다. 사실 다른 해와 달리 2014년은 얼른 떠나 보내고 싶다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슬프고 아쉬운 일이 지나치게 많았지요.
2014년을 돌아보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포털에서 한 해 동안 가장 많이 검색된 단어를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는 방법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네이버에서는 다음이, 다음에서는 네이버가 각각 최다 검색어라는 다소 허탈한 결과가 나왔지만 구글에선 배우 로빈 윌리엄스가 가장 많이 검색된 단어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구글은 사람들의 취향을 쉽게 엿볼 수 있게 해줍니다. 올해 사람들이 가장 좋아한 음악이 영화 '겨울왕국'의 OST라든가, 가장 많이 다운로드받은 애플리케이션이 페이스북이라든가 하는 통계들은 우리의 2014년을 잘 보여줍니다.
올해 새로 만들어진 지식이나 생각 가운데 사람들에게 가장 널리 반향을 일으킨 것들을 살펴보면서 한 해를 되돌아볼 수도 있습니다. 가장 많이 읽힌 논문을 확인해보는 식이지요. 분석들을 살펴보면 올해는 물론 최근 몇 년간 가장 널리 인용되고 있는 논문들은 대부분 생명공학 분야, 그 다음은 신소재 분야의 연구자들로부터 나온 것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정보통신 분야가 산업을 주도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생명공학과 신소재 분야를 주목할 필요가 있는 셈입니다. 또 하나 흥미롭게 느낀 것은 중요한 논문을 생산하는 연구자들 꽤 많은 수가 중국인, 그것도 중국에서 근무하고 있는 이들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 올해 가장 큰 반향을 일으킨 생각을 살펴보려면 책 판매량과 논문 인용도, 그리고 사람들의 논쟁과 같은 것들을 적절히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회과학 분야에서 2014년은 누가 뭐래도 피케티의 해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피케티가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양극화의 원인으로 자본소득과 노동소득의 격차를 지적하였다면,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의 브린욜프슨 교수와 맥아피 교수는 우리의 현재 기술이 야기할 미래의 양극화를 암울하게 전망했습니다. 그들의 책 '제 2의 기계시대'는 로봇에 의한 일자리 잠식에 대한 적지 않은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책이나 논문이 아니라 현실에서 시작되어 큰 논쟁을 불러일으킨 사건들도 있었습니다. 우버를 둘러싼 논쟁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우버나 에어비엔비, 리프트 같은 회사들을 사회적인 효율성을 높이는 혁신적인 공유경제라고 불러야 할지, 세금과 규제를 무시하는 불량기업들이라고 해야 할지 첨예한 대립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올해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서비스와 더불어 이른바 핀테크 분야 스타트업들과 규제의 충돌이 부각되기도 했습니다. 스타트업들이 각국 경제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매김하면서 기존 제도와 부딪혀 발생하는 논란들을 피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 밖에 제 개인적으로 올해 발견한 흥미로운 사실은 작년쯤부터 세계화의 양상이 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선진국이 중국이나 저개발국의 싼 제품을 구매하던 식의 무역이 빠르게 줄어들면서 대신 반도체나 의약품 같은 지식집약적인 물품의 거래가 크게 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제품들의 상당수가 중국에서 생산되고 있다는 것이 통계로 확인됩니다. 내년에는 아마 좀 더 뚜렷해질 것입니다.
다시 달력을 만지작거립니다. 한 해가 간다고 해서 제 게으른 삶이 크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어제를 살듯 내일도 살게 될 것이 거의 틀림없지요. 그러나 아주 조금씩, 털끝만큼이라도 변하지 않고는 살기 어려운 변화의 압력이 우리 곁에 와있습니다. 빙판이라도 발을 내딛어야 살 모양입니다.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 교수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