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술 취한 삶의 아름다움, 수탑 심연섭을 그리워하며
물결이 다하는 곳까지가 바다이다/대기 속에서/그 사람의 숨결이 닿는 데까지/그 사람이다/아니 그 사람이 그리워하는 사람까지가/그 사람이다(고은의 시 ‘그리움’ 중에서)
칼럼니스트 수탑(須塔) 심연섭(沈鍊燮. 1923-1977)만큼 이 시와 잘 어울리는 사람도 흔치 않으리라. 그의 ‘술, 멋, 맛 - 주유만방기(酒游萬邦記)’(1977년. 효문사)는 그의 삶이 힘껏 밀어나간 아름다운 파문(波紋)이다. 세상의 변경을 출렁인 그 물결이 곧 그 사람이다. 그는 스스로 대한민국 제1호 칼럼니스트라고 주장한다. 물론 칼럼을 쓰는 사람은 그 전에도 많았지만, 칼럼니스트라는 직함을 달고 쓴 경우는 그가 처음이란다. 무슨 선구자적인 의식을 갖고 그렇게 한 건 아니었다고 털어놓는다. 동양통신사 조사부장으로 근무하면서 다른 신문에 칼럼을 쓰게 됐는데, 동업 타사의 직함을 박기가 뭐해서 고심 끝에 ‘칼럼니스트’라고 붙였다고 한다. 얼떨결에 ‘프로 칼럼니스트’가 된 심연섭은 그러나, 한국 언론의 칼럼 품격을 바꿔놓는 자유자재의 붓끝이 된다. 30년을 훌쩍 넘어서서 돌아보는 글인데도 수탑의 글들은 전혀 낡지 않았고, 오히려 더 세련의 빛을 발하는 게 신기하다.
어느 해 휴가랍시고 처박힌 적막한 시골에서 집어든 책이었다. 처음엔 잠깐 그늘막에 들어앉는 기분이었는데 슬슬 가부좌로 고쳐앉았다. 제목따나, 처음엔 살풋 취하게 하고, 그 뒤엔 읽을 수록 멋이 있고, 다시 생각할 수록 맛이 있다. 곰곰이 생각한다. 비결이 뭘까. 세월을 머금은 글이 이토록 탱탱한 살결을 유지하다니...지금 당장 신문 칼럼난에 다시 내놔도 독자를 사로잡을 매력이 숨쉬지 않는가. 나는 세 가지 쯤을 꼽아본다. 첫째는 빼어난 감수성이다. 궁상에 가까운 가난도 마누라 잔소리도 술 취한 뒤의 노상방뇨도 숨기지 않지만 거기엔 서글서글한 낙천주의가 배어있다. 춘란의 꽃이 좋아 한 지인을 불렀을 때, 선비가 되려면 난향(蘭香)과 서향(書香) 외에 순료(醇?)의 향기가 필요하다는 말에, ‘이래도 선비가 아니냐’며 아끼던 명주를 서슴없이 내놓기도 한다. 이쯤 되니 그의 칼럼은 요즘의 블로그를 방불한다. 그의 삶이 허튼 장식없이 지면 위로 육박하여 독자를 만난다. 두 번째는 처음부터 끝까지 끈을 놓지 않는 유머 감각이다. 여우와 너구리와 두꺼비의 우스개를 내놓을 때에도 ‘더치 페이’라는 말을 낳은 네덜란드 사람들의 야박한 인심을 소개할 때에도 도그푸드와 개고기의 차이를 설명할 때에도, 혹은 그가 국세청의 주류심의위원으로 위촉되어 이력서를 쓰던 일을 말할 때에도, 그는 천연덕스럽다. 그의 만담(漫談)은 독자가 파안(破顔)을 할 무렵에라야 배꼽을 놔준다. 세 번째는 천상 기자다운 호기심이다. 술도 음식도 모자도 그에게는 애호품인 동시에 영원한 취재 대상이다. 그의 호기심들은 가지에서 가지를 쳐서 당대의 안목을 업그레이드하는, 글로벌한 취향으로 바뀌고, 그의 책 ‘술, 맛, 멋’의 질료가 된다.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그의 글의 종횡무진은, 그의 천진하고 집요한 호기심이 뛰어다닌 동선(動線)이기도 하리라.
나는 책을 읽은 뒤 수탑에게 최초의 칼럼니스트 외에 또 하나의 ‘역사적 감투’를 씌워주고 싶어졌다. ‘한국 웰빙바람의 원조’라는 호칭이다. 천하의 술꾼을 ‘웰빙의 할아버지’라고 말하는 건 가당치 않아 보일 지도 모르지만 그게 그렇지 않다. 그의 주론(酒論)을 들어보라. “술은 그냥 마시고 취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단 한번도 없다. 되도록이면 좋은 술을 그것도 건강을 해치지 않고,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취하는 것을 주력(酒歷) 30년간 모토로 삼고 살아온 내가 아닌가.” 그는 이 나라에 곡주(穀酒)가 사라지고 알콜을 희석한 재제주가 늘어나는 경향에 대해 개탄한 사람이다. 도수만 높고 싼 술로 빨리 취하는 풍토를 보면서 ‘장차 국括?보건은 어떻게 될 것인가’고 걱정하는 사람이다. 자칭 ‘국주(國酒)’라 칭했던 그는 ‘술의 웰빙 문화’를 역설한 사람이라고 봐도 되리라. 요즘의 저열한 음주 패션인 폭탄주 따위를 권장했을 리는 없다. 그러나 수탑은 선견지명이라도 있은 듯, 그가 돌아간 뒤에 유행한 폭탄주의 기원에 대해서도 밝혀놓고 있다. 미국 사람들이 마시는 ‘보일러 메이커(boiler maker)'가 그것이다. “커다란 글라스 안에 버번 위스키가 든 조그만 잔을 안치해놓은 다음, 맥주를 서서히 따라 큰 글라스를 채워주면 버번이 맥주와 동화하느라 보일러 속의 물이 끓어오르듯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이다....속취(速醉)에 효과가 있다던가.”
그의 ‘웰빙음주’의 진면목을 잠깐 볼까. 마닐라에서 마셨다는 산 미구엘 맥주를 표현한 대목. “고산준령의 산정(山頂)을 덮은 백설같은 윗거품. 태초의 심연에서 무슨 사연을 전할 것이 있어서 기어오르고 있는 듯한 가냘픈 포말. 얼른 마셔버리기가 송구스럽도록 해맑은 호박색 맥주 글라스의 첫잔을 기울일 때.” 그리고 3월 춘설이 흩날리는 코펜하겐에서 마신 칼스버그 맥주의 맛. “글라스 윗부분의 약 3분의 1을 차지한 거품의 감촉이 혀끝에 벨벳처럼 부드럽게 느껴졌다. 그 거품을 헤치고 입 안으로 들어오는 그 액체의 짜릿한 맛. 도심에 산재하는 호수들의 코발트색. 그리고 교회당이나 그 밖의 공공건물 지붕 돔을 덮은 동와(銅瓦)가 입고 있는 청동색의 감촉도 그러하려니 생각되었다. 그 동기와가 저런 옷을 입으려면 적어도 40년의 세월이 걸린다던가. 호수들이 그 검푸른 코발트색을 지니기까지는 아마도 영겁의 세월이 흘렀을 것이다. 칼스버그의 그 짜릿한 맛에서 내 상념은 이상한 곳으로 달려가곤 했다.” 나는 산 미구엘 맥주나 칼스버그를 직접 마신 것 만큼이나 문장에 취한다. 어지러울 정도다.
그의 주담은 동서양을 넘나든다.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서북방 쪽으로 4킬로미터 쯤 떨어진 곳에서 오래된 묘비명 하나가 있다고 한다. “팀 오코너. 1620-1720. 아일랜드식 친절과잉으로 숨져 이곳에 잠들다. Succumbed to overdose of Irish hospitality.)" 이 묘비명은 수탑이 직접 본 것은 아니고, 런던의 한 팝 하우스에서 한 남자가 들려준 얘기이다. 사실 그 무덤의 주인공은 100세를 누렸으니 악상(惡喪)은 아닐 법 한데 어찌하여 이런 묘비명을 남겼을까. 이 장수노인에게 아일랜드의 이웃들은 존경과 친절을 듬뿍 술잔에 담아 권했으리라. 그 친절을 과다 음용하는 바람에 할아버지는 돌아가게 된 것이리라. 이 아일랜드인 신사는 그 묘비명을 증명하기라도 하려는 듯 수탑의 술잔이 채 비기도 전에 새 잔을 주문했다. 술을 받으면서 수탑은 은근히 무섭다.
그런 얘기를 풀어놓은 뒤 그는 각국의 권주 문화와 권주사(勸酒辭)를 얘기한다. 영화 ‘애수(Waterloo Bridge)’에서 로버트 테일러와 비비안 리가 공습을 피해 들어간 팝 하우스에서 술잔을 나누며 나눴던 말은 ‘치어리오(Cheerio)’였다. 이런 영국의 건배사가 미국에서는 ‘치어스’나 ‘치어럽’으로 바뀐다. 독일은 ‘프로지트’이고 프랑스는 ‘아 보트르 상떼’와 ‘아 라 보트르’이고 이태리는 ‘알라 살루테’이다. 대개 건강을 기원하는 건배사들이다. 스페인은 좀 더 자세하다. ‘살루드 아모르 아페세타스’ 당신의 건강과 사랑과 돈을 위하여. 그리고 스페인 사람들은 한 마디 덧붙인단다. ‘그 세가지 모두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을 위하여.’ 이제 타이페이 차례다. 수탑은 ‘오월화(五月花)'라는 나이트클럽에 초대를 받았다. 그곳에서 한 아가씨에게 영어로 “메이 플라워를 위하여”라고 건배를 했더니, “오텀 리브즈를 위하여”라는 답이 그녀에게서 날아왔다. 희끗희끗한 머리칼을 보고 시월의 서리내린 잎사귀를 떠올렸으리라. 권주사에 관한 추억의 압권은 대관령 스키장에서 들은 한 여인의 ’장진주사(將進酒辭)이다.
한잔 먹세그려 또 한잔 먹세그려 꽃 꺾어 산(算) 놓고 무진무진 먹세그려. 이 몸 죽은 후면 지게 위에 거적 덮어 줄이어 메어가나 유소보장에 만인이 울어 예나 억새 속새 떡갈나무 백양 속에 가기 곧 가면 누런 해 흰 달 가는 비 굵은 눈 소소리바람 불 제 뉘 한 잔 먹자 할꼬 하물며 무덤 위에 잔나비 파람 불 제야 뉘우친들 어찌하리
수탑은 애수에 젖은 여인의 음성을 들으며 애주가 선배 송강을 생각한다. ‘술에 대한 그의 접근방식이 이렇게 처절했던 것은 동양적인 멋의 한 측면’이라고 그는 규정한다. 술의 웰빙을 생각하는 그에게 송강의 이런 태도는 그리 마뜩지 않았을지 모른다. “생과 대결하는 수단으로서의 술 같아서 동양의 술은 너무나 절박감을 느끼게 한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그는 얼른 파리의 오페라극장 근처에 있는 ‘해리즈 뉴욕 바’의 술 헌장(憲章)을 낭독함으로써 꿀꿀한 분위기를 수습하려 한다. 그 헌장에는 ‘당신이 술을 먹다 건강을 잃고 지옥에 떨어진다 치자. 그러면 그곳에 먼저 가 있을 당신의 옛 술친구들과 악수하느라 바빠 걱정할 겨를이 없을 것이다.’ 과연, 낙천주의자 수탑에 어울리는 익살이다. 그러나 그가 돌아간지 30년이 된 지금 새삼 송강의 장진주사는 실감난다. 누런 해 흰 달 가는 비 굵은 눈 소소리바람 불 제에도 누가 수탑에게 한 잔 먹자고 권할 것인가. 내 이런 시무룩한 질문에 저쪽에서 수탑이 이렇게 대답하는 듯 하다. “먼저 간 옛 술친구들과 한 잔 하고 있으니, 걱정 말게.”
주선(酒仙) 이백의 시, ‘상전명월광 의시지상상(牀前明月光 疑是地上霜, 책상 앞에 달빛 밝으니 마치 땅 위에 내린 서리처럼 보이네)’을 술 깰 무렵의 환각으로 보는 대목은 과연 수탑답다. 하늘의 달빛을 지상의 서리로 읽는 그 눈은 ‘천상(天上)’의 안목이기도 하다. 술은 인간을 그 반열에 올려놓는 것이니, 어찌 웰빙이 아니겠는가.
책에 워낙 술냄새부터 진동하다 보니, 미식가 수탑, 패셔너블한 수탑, 혹은 풍류와 유머를 즐기는 ‘모던한 선비’ 수탑이 가려진다. 그러나, 하나하나 결코 술자리보다 덜하지 않는 매력을 지닌다. “먹는다는 것은 하나의 필요성이지만, 잘 먹는다는 것은 하나의 예술”이라는, 식도락의 이론가 브리야 샤바랭의 말을 인용하는 수탑은, 서울에 온 국제올림픽위원인 프랑스의 보몽 백작 이야기를 들려준다. 보몽은 중국 주은래의 초대를 받았다. 거기서 희한한 맛의 음식을 맛본다. 보몽이 주은래에게 대체 그게 무슨 요리냐고 묻자 주은래는 반가워하면서 수퀑의 혓바닥만 모아서 중국의 술을 넣어 스튜한 것이라고 말해준다. 수퀑의 혓바닥을 대체 몇 개를 모아야 저렇게 한 접시의 요리가 되는 걸까? 보몽은 감탄했다. 백작은 프랑스의 자기 영지로 돌아가자마자 하인을 시켜 수퀑을 잡아 모으게 했다고 한다. “그럭저럭 스튜 한 접시를 만들 분량을 마련했죠.” 백작의 이런 수다에는, 자신이 얼마나 부자인가를 은근히 과시하는 냄새도 난다. 그런데 중국인 요리사를 시켜 정작 요리를 해놓으니 그 맛이 안나더라는 것이다. 숙수(熟手)의 솜씨 탓이 아니고, 중국의 술을 쓰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닐까 하고 그는 짐작한다. 미식(美食)은 부(富)와 분리할 수 없는 것이지만, 이 청빈한 기자 수탑은 직업의 힘을 빌려 세계 곳곳의 맛을 찾아내 군침나게 풀어간다.
그의 모자 이야기도 빙그레 웃음짓게 한다. 빡빡머리 중학시절부터 그는 사포라는 모자를 썼다. 짱구머리를 감추기 위해서였다. 대학에 다니면서는 기른 머리가 너무 빳빳해서 모자를 썼다. 필그림사에서 나온 펠트모자를 쓴 건 그때부터다. 한국전쟁 중에는 전투모를 썼다. 한때 그는 영국산 베레모를 쓰기도 했다. 이 모자는 월급 봉투를 송두리째 거덜내고 갈짓자 걸음으로 통금시간을 알리는 사이렌과 더불어 집으로 돌아온 날, 아내에 의해 아궁이에 들어갔다. 그래도 그는 미련이 남아 런던에 가는 친구에게 베레모를 구입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수탑이 베레모를 쓰고 다니는 것에 약간 불만이 있었다. 그래서 빨간 것을 하나 사왔다. 설마 백주에 이걸 쓰고 다니랴 싶어서였단다. 그런데 그는 포트 와인 빛 그 베레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길에서 뭇시선들을 받아가면서도 꿋꿋이 그 모자를 쓰고 출퇴근을 했다. 어느날 버스를 타고가다가 자기가 쓴 것과 똑같은 베레모를 쓴 신부님을 발견하고는 차에서 뛰어내리고 싶을 정도로 반가웠다는 얘기도 덧붙인다.
왜 호가 수탑(須塔)일까. 그의 지인들은 증언해줄 수 있겠지만, 책에는 나오지 않는다. 의미 만으로 풀면 ‘모름지기 하나의 탑’이니, 어떤 일이든 하나의 경지를 이루는 그의 치열성에 걸맞다. 탑이란 원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그리고 희망하는 것의 표상일진데 그는 술의 탑이요 맛과 멋의 탑이다. 한 시대 깨끗한 지식인이 쌓아올린 언어의 탑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그 소릿값을 중시한다. 그건 '스탑(STOP)'의 한자 표기다. 어이, 딱 한 잔만 더 하는 게 어떨까? “자, 이제...스탑!” 이 대목 말이다. 그는 이제 막 발동이 걸린 술맛에 제동을 거는 상대를 많이 만났을 지도 모른다. 여기서, 스탑! 손바닥을 펴올린 상대를 향해 그는 중얼거렸을 것이다. “그래? 스탑? 그거, 나의 호로 삼아야겠군.” 황진이가 젖은 몸으로 곁에 누워 잠들어 있는데도 끄떡없던 화담 서경덕이 구사했던 마인드 컨트롤이 바로 ‘지(止)’였다. “네 욕망을 직시하고 지금 거기서 잠깐 멈춰 있으라. 그러면 욕망은 지나가고 너는 평정한 상태로 남을 수 있다.” 화담의 이 지론(止論)과 수탑의 ‘스탑’은 닮아 있지 않은가. 술과 음식과 패션들이 ‘웰빙’을 지키지 못하는 까닭은 그것이 스탑할 자리에서 스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 웰빙의 원조는 ‘아름다운 절제의 선(線)’을 말할 자격이 있지 않은가. ‘스탑’은 수탑이 스스로에게 하는 경계(警戒)이며, 문제를 성찰하는 신중함을 벼르는 철학이기도 하다. 그는 격동의 시대를 살면서도, 부질없는 욕망으로 나아가지 않고 멈춰서서 그것을 사유(思惟)하는 지식인의 본분을 지켰다. 한잔 더 하고 싶은 마음을 줄이는 그, 멈춤의 훈련을 통해, 그는 이토록 아름다운 언어의 집을 꾸렸는지 모른다.
이상국 편집에디터, 스토리연구소장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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