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희준 외교·통일 선임기자]북한과 일본의 기습 외교로 교착상태에 빠졌던 동북아 외교 지평에 지각변동이 일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
북한이 장기 억류 미국인을 석방하면서 미국에 대화 신호를 보내고 일본은 영토문제로 갈등을 빚어온 중국과 러시아와 정상회담을 가지면서 외교 고립 탈피를 모색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 우호적인 관계에 기대어 북한과 일본에 대한 압박 외교를 펴온 한국은 자칫 외톨이가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우리의 외교전략에 빨간 불이 켜진 셈이다.
북한은 비핵화와 인권문제 개선이 없는 한 대화를 하지 않는다는 미국에 케네스 배 등 2명의 미국인을 석방하면서 대화의 메시지를 던졌다. 북한 인권상화의 국제사법재판소(ICC) 회부 회피를 위한 유화책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이 미국에 던지는 대화를 위한 분위기 조성용 메시지"라고 풀이했다.
더욱이 미국은 제임스 클래퍼 미국국가정보국(DNI) 국장을 북한에 보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친서 내용에 따라 양국 간 관계도 개선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반면, 북한은 우리 정부를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지난달 4일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 등 최고위 인사 3명이 와서 2차 고위급 접촉을 갖기로 합의했다가 '대북 전단' 살포를 이유로 이를 무산시켰다. 북한은 김정욱 선교사를 송환하라는 우리 측 요구는 물론, 남북 접촉도 거부했다.유일한 희망은 방북 승인을 신청한 구순의 이희호 여사 뿐이다.
일본도 한국의 허를 찔렀다. 일본은 중국 베이징에서 열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는 9일 밤 베이징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평화 조약 문제 등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베는 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10~11일 사이에 정상회담을 갖기로 합의했다. 아베와 시 주석의 정상회담은 처음이다. 일본이 배타적으로 점유하고 있지만 영유권 논란이 불거진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분쟁지역으로 양보하고,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중단을 약속하면서 정상회담이 전격 타결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중국이 자국 이익을 위해 일본과 관계개선에 속도를 낸다면 과거사 문제를 기반으로 한 한중 공조체제는 느슨해지고 한중일 3국 관계에서 한국은 외톨이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고 북일,북미 관계 진전 속도에 따라 남북관계,대중,대일 전략을 새로 짜야 한다는 다소 성급한 지적도 제기되고 있는 형국이다.
정부는 APEC에서 한·중, 한·미 연쇄 정상회담을 통해 현재 외교 상황을 관리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북미관계보다는 미중 관계를 주목할 것"을 주문했다.최 부원장은 "일중이 만나도 획기적 성과를 내지 못할 것"이라면서 "아베는 국내 정치 여건상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센카쿠 열도 문제에서 양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북미 관계와 관련해서도 핵문제가 풀리지 않는 한 북미 관계가 진전을 보이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최 부원장은 "일중 정상회담은 만남을 위한 만남이지 획기적 전환을 위한 모멘텀은 없을 것"이라면서 "미중 관계에 관심갖고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희준 외교·통일 선임기자 jacklond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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