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떼訪北 정주영 1세대, 옥수수 최종현 2세대 이어…9년만에 통일경제委 닻올린 전경련
초대회장엔 손길승 SKT명예회장, 대북사업 관련 CEO 23명 참여…청와대 통일준비委와 코드 맞춰
[아시아경제 유인호 기자] 청와대가 '통일 한국'을 위해 통일준비위원회를 출범한 데 이어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 21일 9년만에 통일관련 상설조직인 통일경제위원회를 공식 출범시키면서 화답했다.
재계의 이번 통일위 출범은 남북기업간 3세대 교류를 위한 신호로 분류된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등 재계 1세대들의 남북교류가 1세대, 1997년 전경련이 남북경제협력위원회를 설치하면서 공식 루트를 통해 진행된 대북 교류가 2세대라 할 수 있다.
재계 관계자는 "1세대는 정치적이었고 1세대는 경제협력에 대한 기본틀을 갖췄지만 지속되지 못했다"며 "이번에는 과거의 시행착오를 반면교사로 삼아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1세대의 경우 당시 냉전시대로 남북 교류가 막혔던 상황에서 재계 인사들이 물꼬를 텄다는 평가를 받는다. 물론, 정치적인 목적에 의해 기업들이 이용됐다는 비판도 동시에 나온다. 하지만 국내 재계 1세대 총수들이 남북 교류에 큰 기여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김 전 회장은 '김우중과의 대화'라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노태우 정부시절 김정일 전 주석을 20여 차례 만났으며, 인간적으로 깊은 신뢰관계를 형성했다고 회술했다.
정 명예회장은 1998년 두차례에 걸쳐 소떼 1001마리를 끌고 판문점을 넘어 북한을 방문했다. 두번의 소떼방북으로 역사적인 금강산 관광 길이 열리게 됐으며, 2000년 남북정상회담과 개성공단 건립 합의의 초석이 됐다.
2세대는 당시 전경련 회장이었던 최종현 고 SK 그룹회장이 대북 교류에 남다른 의지를 보였다. 최 회장은 '통일한국을 향한 남북한 산업지도 연구' 뿐만 아니라, '대북 인도적 지원 차원에서 적십자사 통해 200만 달러 상당의 옥수수 1.1만t을 보냈다. 재계 차원의 첫 대북 지원이었다. 이후 99년 비료(80억원), 2001년 겨울 내의(50억원) 등의 지원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이는 오래가지 못하고 남북경제협력위 설치 8년만인 2005년 폐지됐다. 당시 노무현 정부 들어 현대그룹의 대북 송금 사건 등이 터지면서 재계가 대북 교류에 거리를 두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보수적인 '비핵ㆍ개방ㆍ3000'정책을 표방하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재계 차원의 남북 교류는 사실상 중단됐다.
그러다 박근혜 정부 들어 새로운 아젠다로 '통일한국'을 표방하고 통일준비위원회를 출범시키면서 재계도 이에 적극 동참하고 나섰다. 재계 차원의 세번째 남북 교류 시도인 셈이다.
이런 맥락에서 새롭게 출범한 통일경제위에는 원로급 재계 인사들이 참여했다. 이중에서도 초대 통일경제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임된 손길승 SK텔레콤 명예회장(72)이 눈에 띈다. 손 명예회장은 2003년 제 28대 전경련 회장 당시 남북경제협력 등 북한 문제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가졌던 만큼 이번 통일경제위 수장을 맡으면서 의지가 남달랐다는 게 참석자들의 전언이다. 그는 '위원장직을 맡아달라'는 전경련 측 요청을 받아들이면서 "할 거면 다 같이 열심히 하자"고 의지를 불태웠다고 한다.
이번 전경련 통일경제위에는 참여한 23명의 기업ㆍ기관 최고경영자(CEO)의 면면을 봐도 앞으로의 활동을 가늠케한다. 특히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등 대북 사업과 관련된 기업의 CEO들이 모두 참여해 재계 차원의 현실적인 통일 한국 대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통일부 차관 출신의 조건식 현대아산을 비롯 박성철 신원 회장, 최병오 패션그룹 형지 회장, 박상권 평화자동차 사장 등의 활약이 기대되는 이유다. 아울러 김진일 포스코 사장, 지창훈 대한항공 사장, 윤창운 코오롱글로벌 대표 등 재계의 대표적인 CEO들도 위원으로 참여했다. 이들은 향후 박근혜 정부가 통일 한국을 위해 추진하는 유라시아 프로젝트와 관련돼 이번 통일경제위에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엄치성 전경련 국제본부장은 향후 운영 계획에 대해 "앞으로 분기 1회 전체회의를 열고 수시로 자문위원들과 접촉해 정부 측에 의견을 전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인호 기자 sinryu00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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