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강욱 기자]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가 계획대로 실시되면 국내 생산물량의 해외 이전, 위기기업의 경영 악화 등 국내 산업에 다양한 유형의 타격이 우려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업종별 주요 단체와 공동으로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가 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해 10일 발표했다.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는 연도별 목표 배출량을 기준으로 업종·기업별 감축량을 배분하고 할당된 배출량을 거래하게 해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한 제도로 내년 1월 시행될 예정이다.
전경련은 배출권거래제 시행 시 국내 산업에 예상되는 손실 유형으로 국내 생산물량의 해외 이전, 위기기업 경영 악화, 국내 사업장의 생산 제약, 신기술 개발과 신시장 선점 지연 등 네 가지를 들었다.
◆국내 생산물량의 해외 이전
국내와 해외에 생산기지가 있는 반도체기업 A사는 배출권 부담비용을 고려해 국내 생산량 조정을 고심하고 있다. 해외 사업장은 배출권거래제 미시행 국가여서 국내 사업장과 제품 원가 차이가 더 벌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 회사가 배출권거래제 1차 계획기간(2015∼2017년)의 부담 예상액을 자체 분석한 결과 최대 6000억원 수준으로 나타났다. 가격이 핵심 경쟁력인 반도체 시장에서 이는 큰 부담인데다 온실가스 감축노력도 이미 한계에 도달해 국내 투자가 제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최근 중국 등에 사업장을 확충한 디스플레이업체 B사도 배출권거래제 시행 시 중국 경쟁 업체의 제품 판매가격이 자사와 비슷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1차 계획기간 약 6000억원의 배출권 비용부담이 발생하면 기존 액정표시장치(LCD) 생산면적 1㎡당 7000원에 달하던 중국 기업과의 가격차가 약 300원까지 좁혀질 것으로 전망했다. 향후 국내 생산제품의 가격우위 확보가 어려워지면 중국으로 생산기반 이전이 점차 가속할 것이라는 우려다.
철강업체 중 석탄을 원료로 사용하는 일관제철 공정을 둔 기업 2곳은 공정 특성상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아 1차 계획기간 배출권 비용부담 총합이 최대 2조8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또 올해 철강업 조강생산 예상물량은 7200만t이지만 정부의 할당계획안에 맞춰 생산할 경우 2015년 이후엔 최대 생산량이 연간 6500만t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따라 부족한 국내 생산물량을 경쟁국에서 수입할 수밖에 없게 돼 신규투자 사업 추진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위기기업 경영악화
작년 약 3500억의 순손실을 본 시멘트기업 C사는 1차 계획기간에 배출권 비용 예상액이 약 700억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이 경우 사업 지속이 어려울 수 있다는 입장이다.
배출량 비용을 물지 않으려면 생산량을 줄여야 하지만 수익구조 개선을 위해선 생산량을 늘려야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에 놓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작년에 순손실을 기록한 반도체기업 D사도 배출권거래제 시행 시 1차 계획기간에 100억원 이상의 부담이 발생해 투자와 고용 환경이 악화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조선해양플랜트업계도 향후 해양플랜트 분야 수요물량이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는 상황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이 급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특히 시운전부문은 조선회사의 관리범주를 넘어, 선주 측의 요구에 따라 예상범위 이상의 시간과 연료소모가 빈번하게 발생돼 온실가스 배출량을 예측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게다가 주요 경쟁국인 중국, 일본은 배출권거래제가 강제되지 않고 있어, 우리나라 핵심수출산업의 경쟁력 약화가 우려되고 있다.
◆국내 사업장의 생산 제약
작년에 400여억원의 순이익을 낸 기업 E사는 1차 계획기간에 배출권 비용 예상액이 약 2천700억원으로 나오자 비용 부담을 줄이려면 조업라인 4개 가운데 1개를 폐쇄해 생산물량을 감축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또 연간 250만톤에 달하는 수출물량의 약 50%를 취소해야 하는 지경에 처했다.
최근 경영위기에서 벗어나고 있는 한 자동차기업은 가동률을 높여 생산량을 약 50% 이상 확대할 계획이지만 배출권 비용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자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고 있다.
이 회사는 사양 업체는 배출권 판매로 불로소득을 얻는 반면, 성장 업체는 엄청난 배출권 구매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신기술개발·신시장 선점 지연
탄소섬유, 슈퍼섬유 등 신소재를 통해 도약을 꾀하는 한 화학섬유기업은 배출권거래제가 큰 부담이다. 신소재 관련 제품군이 기존 섬유제품보다 에너지 소비가 많아 생산량이 조금만 증가해도 배출권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원가가 높은 신소재 특성상 원가절감이 제품 상용화의 관건이지만 배출권 비용으로 상용화가 지연될 가능성도 우려하고 있다.
이 회사는 신소재 개발이 초기 온실가스 배출량은 많지만, 상용화된다면 환경에 더 이로울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단적으로 1,375kg짜리 자동차의 차체·부품 20%를 탄소섬유로 교체하면 중량이 30%감소돼 연간 온실가스 0.5톤을 감축시킬 수 있다.
한 자동차기업은 친환경차 개발에 필요한 신축 연구소 건물 10개동, 신규 시험 장비 도입 등으로 전력사용량이 증가하면 간접배출의 명목으로 250억원에 달하는 배출권 비용을 부담해야 해 신기술 개발이 지연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유환익 전경련 산업본부장은 "배출권거래제는 기업규모에 따라 적게는 수십억, 많게는 수천억 또는 조 단위의 추가비용이 예상되고 있어 국내 투자·고용환경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경영위기 기업에게는 맹독이 될 수 있다"며 "새 경제팀이 출범돼 경제 재도약을 위한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만큼, 배출권거래제 시행시기를 연기하거나 과소 산정된 할당량을 재검토해 국내 투자의욕이 꺾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강욱 기자 jomaro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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