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대표팀의 차기 감독 선임 작업이 원점으로 돌아갔다. 우선협상 대상이자 유력한 후보였던 베르트 판 마르베이크 감독(62·네덜란드)과의 계약이 결렬됐기 때문이다.
대한축구협회가 판 마르베이크 감독과 접촉하는 과정은 유례 없이 투명했다. 후보군을 선정하는 데서부터 대상자의 의사를 타진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데까지 일련의 과정이 모두 언론에 공개됐다. 이용수 축구협회 기술위원장(55)은 협상이 채 마무리되지 않은 지난 7일 긴급 브리핑을 열고 답변을 받기로 약속한 시점까지 공개했다. 그는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추측과 억측이 나왔다. 현 상황을 정확히 말씀드리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이는 또 다른 부작용을 낳았다. 예정된 시일이 넘도록 결론이 나지 않자 계약이 무산될 가능성이 제기됐고, 결과도 다르지 않았다.
차순위 후보군을 접촉해야 할 축구협회의 입장은 난처하다. 판 마르베이크 감독의 대안을 찾는다는 사실이 확인된 이상 협상에서 주도권을 잡기 어려워졌다. 시간에 쫓기는 듯한 인상을 남기면서 의욕을 가지고 설정한 후보선정 기준도 불과 2주 만에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월드컵 본선과 대륙별 선수권대회에서 성과를 낸 경험, 영어 구사 능력 등 당초 축구협회 기술위원회가 제시한 신임 감독의 자격 조건은 모두 여덟 가지다. 외국인 지도자 영입이라는 전제를 더하면 조건에 부합하는 인물은 손에 꼽을 정도다. 판 마르베이크 감독이 협상 전부터 유력한 후보로 거론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 위원장은 후보자 한 명을 접촉하고 원칙을 수정하면서 "자격 기준이 너무 이상적이고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협상내용이 과도하게 노출되어 어려움을 겪었다"고 했다. 관심이 집중된 일을 추진하면서, 영입의 원칙과 협상 방식에서 비롯된 문제점을 반성하기보다 여론을 향해 자제를 요구하는 태도로 보인다. 밀실 행정을 한다는 비판을 받은 전임 집행부와 비교하면 투명성을 추구하는 기술위원회의 자세는 분명 기대를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투명성이라는 '모양내기'에 집착한 나머지 '우수한 감독을 좋은 조건으로 영입한다'는 현실적인 목표로부터 이탈할 위험은 없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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