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관피아(관료+마피아)'를 척결하기 위해 공공 부문에 관료 출신 낙하산 인사를 최대한 배제하겠다고 밝혔다. 또 행정고시 제도를 개혁해 민간업계 출신을 대거 공무원 자리에 기용하겠다고 밝혔다. '관료 출신은 공무원을 그만둔 후 민간업계에 3년간 재취업할 수 없게 돼 있는데, 그렇다면 민간업계의 유능한 인재 중 누가 공무원을 지원하겠는가'라는 문제 제기가 있자 민간인 출신 공무원에 대해선 예외조항을 둬 재취업이 가능토록 하겠다는 해답을 내놓았다. 이것이 맞는 해법일까.
노동시장은 생산물시장과 달리 '분리시장(separate market)' 개념이 적용되는 대표적 시장이다. 산업ㆍ노동숙련도ㆍ학력ㆍ연령별로 시장을 분리하는 요소들이 작용해 A시장의 노동자가 B시장, C시장으로 쉽게 진입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 미묘한 분리시장이 있다. 바로 '갑(甲)'시장과 '을(乙)'시장이다. 갑시장에서 취업하는 사람과 을시장에서 취업하는 사람은 주로 각각의 시장 내에서 재취업하기 마련이다.
예컨대 미국 캘퍼스(Calpus) 같은 공무원연금이나 하버드ㆍ예일대 등 거대 대학의 재원을 운용하는 자산운용 담당자(CIOㆍChief Investment Officer)는 운용자금을 민간 자산운용 시장에 맡기는 역할을 하는 대표적인 갑시장 일자리다. 이와 달리 민간업계 CIO는 갑시장에서 자산운용을 위탁받는 을시장 일자리다. 갑시장의 CIO는 갑시장에서 다시 고용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예 갑시장에서만 움직이는 자산운용 전문가들의 명단이 있을 정도다.
왜 그럴까. 을시장의 투자전문가가 갑시장의 CIO로 고용되면 자신이 책임진 자산의 운용에 100% 노력하기보다 나중에 을시장에 재진입할 때 자신의 몸값을 높이는 방향으로 자산운용을 설계하는 '도덕적 해이' 현상을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갑시장 담당자에게서도 을시장과 연결된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두 시장을 움직이는 논리와 동력, DNA가 다르다는 점이 두 시장이 분리되는 핵심 이유다.
한국의 공무원 시장과 민간업계 시장도 이와 유사한 갑시장-을시장의 성격과 패턴을 지니고 있다. 중앙부처 고위 공무원일수록 장기적 생존을 위해 몸조심을 한다. 법을 어기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보수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이 같은 갑시장의 생리와 달리 을시장인 민간업계에서는 효율성 극대화와 개인적 인센티브를 중시하는 것이 최대 가치다. 두 시장을 움직이는 동력과 DNA가 근본적으로 다르고, 이것이 각각의 시장에 속한 사람들을 전혀 달리 진화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일부 공무원 출신이 문제를 일으켰다면 왜 문제가 발생했는지를 분석해 이를 방지할 수 있는 시스템과 견제 장치를 만드는 것이 해법이다. 민간업계 시장(을시장)에서 움직이던 사람을 공무원 시장(갑시장)으로 대거 이동시키는 것이 과연 올바른 대책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창의성과 효율성이 필요한 직제에 일부 민간인 출신을 영입하는 정도라면 몰라도 능력과 무관하게 갑시장-을시장을 뒤섞는 시도는 더 큰 혼란을 야기할 수도 있다. 민간인을 공공 부문에 대거 기용하는 정책이 그 의도를 실현하는 데 실패하지 않게 하려면 '민간은 선(善)이고 공공은 악(惡)'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탈피해야 한다. 아무리 선량한 의도에서 공공개혁을 추진한다 해도 그것이 반드시 의도에 맞는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또한 민간인 출신 공기업 사장이라고 처음부터 공무원이었던 사람보다 더 도덕적이고 투명한 경영을 한다고 장담할 수 없다. 무늬만 민간인이고 사실은 정권에 깊숙이 연결돼 있는 사람들을 배제할 장치도 없다. 정부는 이런 문제에도 대답할 필요가 있다.
홍은주 한양사이버대 경제금융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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