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입 23년만에 재검토…이통시장 대표적 규제 '완화' 목소리 커져
대한민국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이 기로에 섰다. 이동통신 보조금을 어떻게 조정할지, 통신요금 인가제를 폐지할지, 인터넷 사용자의 '잊힐 권리'를 도입해야 할지 의견이 분분하다. 인터넷 망 중립성을 둘러싼 논쟁도 불씨가 여전하고, 국가안전재난망 구축 사업도 백가쟁명식 해법이 제기되고 있다. 모두가 ICT 산업의 경쟁력이 걸린 중차대한 문제다. 때마침 미래창조과학부는 새로운 수장을 맞았고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미방위)도 새로 꾸려졌다. 본지는 미방위 의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와 각계 전문가들의 고언 등을 통해 ICT 현안의 올바른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
<시리즈>
①단말기유통법 보조금 상한선
②인터넷 사용자의 '잊힐 권리' 논쟁
③통신요금 인가제 찬반논란
④망 중립성을 둘러싼 갈등
⑤국가재난안전통신망 구축, 어떻게
- 미방위 의원 83% ‘폐지·규제완화’ 무게
- 시대착오적·세계추세 역행 “요금인가제, 언제까지 그냥 둘 건가”
- 시장지배사업자 견제 수단 남겨야 한다는 반론도
[아시아경제 김영식 기자] 국내 이동통신시장의 대표적 규제정책인 통신요금 인가제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책 입안자인 국회의원들의 다수는 현행 요금인가제를 폐지하거나 최소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보는 것으로 조사됐다.
요금인가제는 신규 사업자를 보호해 통신업계의 공정경쟁 환경을 조성하자는 취지에서 1991년 도입된 제도로, 현재 이동전화 분야에서는 시장점유율 1위 사업자인 SK텔레콤이 인가제 적용 대상으로, 요금인상이나 신규요금제를 출시할 때 당국의 인가를 받도록 돼 있다. 후발 사업자인 KT와 LG유플러스는 신고만 하면 된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가계통신비 경감을 위해 인가제를 폐지함으로써 요금경쟁을 유도하자는 주장이 제기된 이래 인가제 존폐를 둘러싼 논란이 커졌고, 주무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는 올해 연구반을 구성해 통신요금 인가제를 23년 만에 전면 재검토하는 절차에 착수했다. 각계 의견수렴 절차를 거쳐 올해 11월로 예정된 ‘중장기 통신정책방향’에 반영할 방침이다.
◆국회의원 "인가제, 폐지하거나 최소 완화해야" = 9일 아시아경제신문이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국회의원 23명 가운데 1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현행 인가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이 전체의 83%(15명)로 가장 많았다. 현행 인가제의 유지를 지지한 의원은 1명에 그쳤다.
그러나 인가제를 폐지할지, 수정·보완할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우선 인가제를 폐지하자는 데 39%(7명)의 의원들이 찬성했다. 이 중 인가제를 폐지하고 신고제로 완전전환하자는 의견은 22%(4명), 신고제로 전환하더라도 지배적 사업자에 대한 별도 규제기준을 두자는 의견이 17%(3명)였다.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A의원은 “일각에서 주장하는 약탈적 시장지배는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며, 알뜰폰 같은 저렴한 통신서비스의 등장으로 충분히 소비자의 선택 폭이 넓어졌다”며 전면 폐지 방안을 지지했다. 새누리당 소속 B의원은 “세계적 추세에 맞게 통신요금 규제를 완화하자는 목소리가 큰 만큼, 현행 요금인가제를 신고제로 전환하되 1위 사업자의 약탈적 요금제 출시, 시장 지배력 남용 등에 대한 사후 규제 등을 통해 시장 경쟁을 활성화하자”고 말했다.
반면 인가제의 틀을 일단 유지하면서 사후규제를 강화하고 사전심사는 완화하는 식으로 손보자는 입장은 44%(8명)로 나타났다. C의원(새정치민주연합)은 “시장 지배적인 사업자가 선도적으로 통신요금을 인하하지 않는 상황에서 인가제 폐지가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있다”면서 “인가제 폐지보다는 선발 사업자의 시장 지배력이 고착화되지 않도록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논란 핵심은 ‘5:3:2’ 점유율 구도 = 현재 국내 이동통신시장 점유율은 SK텔레콤 50%, KT 30%, LG유플러스 20%의 이른바 ‘5:3:2’ 구도가 10년 넘게 굳어져 있다. 이를 놓고 SK텔레콤은 국내 이통시장 경쟁이 충분히 성숙됐다는 이유로 폐지를, KT와 LG유플러스는 지배사업자에 대한 견제가 여전히 필요하다며 현행 유지를 요구하고 있다. 점유율 구도를 깨야 한다는 근거는 같으나, 서로 상반된 해석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폐지를 주장하는 쪽은 인가제의 ‘가격우산’ 아래 후발 사업자들이 안주했기 때문이며, 요금 경쟁 시 통신사업자의 요금 출시 기간이 단축돼 요금 경쟁을 활성화할 수 있다는 논리를 편다. 무선 1위사업자 시장지배율이 50% 이상인 외국에서도 이 같은 제도는 없으며 규제완화·폐지라는 세계적 추세에 역행한다는 것이다.
반면 존치를 주장하는 쪽은 1위 사업자가 시장지배력을 더욱 고착화하는 요금제를 내놓아 후발 사업자를 위축시키고 독점이 심화될 것이라고 말한다. 요금규제는 해외와 국내를 단순비교할 수 없고 정부의 시장지배력 관련 규제가 완전히 소멸될 수 있다는 논리다.
◆ 인가제 수술로 무게 기우나 = 미래부는 애초 6월 말 인가제 개선을 위한 로드맵을 내놓을 계획이었으나 논란이 분분한데다 장관 교체까지 맞물리면서 일단 연기했다. 그러나 안팎에서는 가계통신비 인하라는 정책 기조로 볼 때 정부가 어떻게든 현행 인가제를 손볼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일각에서는 그동안 도가 넘었다는 비판을 받아 온 이통사들의 무분별한 ‘요금제 베끼기’ 관행, 요금 인하보다 휴대폰 보조금 경쟁을 통한 ‘가입자 뺏기’ 관행을 근절하기 위해서라도 인가제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신업계에서는 한 사업자가 신규 요금제를 발표하면 경쟁 사업자들이 이와 비슷한 요금제를 내놓는 베끼기 논란이 해마다 거듭되고 있다. 이 같은 요금제 베끼기가 사실상 이통사들의 요금 담합행위란 비판도 거세다.
권은희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인가제가 오히려 통신사 간 경쟁을 통한 요금 인하 가능성을 줄이는 작용을 하고 있다”며 인가제 폐지를 주장했다. 전병헌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7일 최양희 미래부 장관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인가제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사전규제로 보조금 경쟁에서 벗어나 서비스·요금 경쟁을 유도하려면 이를 폐지해야 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달 12일 열린 ‘통신요금규제 개선 로드맵 수립 토론회에서 “요금경쟁을 못하게 했으니 물이 막히면 다른 곳으로 흐르듯 보조금 경쟁이 격화되는 것”이라면서 “고착화된 담합구조와 가격우산을 깨려면 시대에 맞지 않는 규제를 과감히 없앨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신종원 YMCA 실장은 “올해 10월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이 시행되면 요금과 서비스 중심의 경쟁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다”면서 “현행 인가제에 대해 적어도 변화를 줄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김영식 기자 gra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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