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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의 습격]바위를 ‘하다’(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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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의 습격]바위를 ‘하다’(65) 낱말의 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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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바위를 '한다'라고 그런다. 암벽을 '탄다'라고 하지 않는 것은 그 행위에 대한 어떤 강렬한 자각 때문일까. 그의 얘기를 더 들어보면 그 말엔 그만이 느끼는 진한 쾌감이 숨어있는 듯 하다. 도둑질을 '하듯' 마약을 '하듯' 그는 그 일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바위를 하는 사람들은 처음엔 작은 위험에도 흥분하고 전율하지만 차츰 그것이 익숙해지면 더 큰 위험을 향해 나아간다. 그 위험과 고난에의 업그레이드를 향한 욕망은 그의 많은 선배들 혹은 동료들을 죽게 하거나 치명적으로 다치게 하기도 했지만, 그것 또한 그에게 그 사선으로 기어오르게 하는 매력을 증가시키는 요소일 뿐이다. 이미 정복한 욕망은 시시하다. 그가 바위를 하는 것은, 새로움을 범(犯)하는 즐거움이다. 인간의 강렬한 즐거움들은 대부분 새로운 것들이다. 그는 그 새로움을 흡입하고 그 새로움을 넘어섬으로써 늘 새로워지는 것이다. 물론 죽을 때까지 욕망은 멈추지 않겠지만, 그것이 멈춘다면 그게 어디 생이겠는가.


그는 어느 날 손을 숨겼다. 그러나 손목에 테이프가 여러 개 붙어있는 것으로 봐서 상처가 상당히 심했다. 나는 그가 손을 숨기는 태도를 보고는 더이상 자초지종을 묻지 않았다. 식사하는 자리에서 누군가가 그 상처에 대해 물었을 때 그는 약간 민망한 기색으로 대답했다. 일요일 혼자 바위를 하는데, 위쪽에 작은 구멍같은 틈새가 있어 그 안에 손을 밀어넣고 올랐는데, 그때는 아픔을 몰랐다고 한다. 집에 돌아와 손이 욱씬거린다 싶어 보니, 여러 군데의 살점이 패여져 있었다. 생명보험에서도 암벽등반가란 걸 알면 보험을 받아주지 않는다. 언제 큰 돈을 내줘야할 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그의 취미가 그의 목숨의 값어치를 크게 하향평가하게 하는 셈이다. 목숨을 건 취미.


그의 눈은 위험에 단련되어서인지 아주 맑고 투명하고 빛난다. 푸른 산의 정기, 암벽의 골기, 그리고 사시사철의 나무들이 뱉는 공기까지를 맡아온 사람이 아닌가. 그의 숨소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고요해 가끔은 바위같다. 누구를 탓하거나 누구를 욕하는 대열에 결코 끼지 않고, 오로지 자기 할 일 만을 성실함을 다해서 한다. 삶이 앞에 놓인 험준한 바위산과 뭐가 다르냐고 섣부른 은유를 놀리진 않고 싶다. 그저 고요한 한 풍경이다. 사람이 풍경이다.

'낱말의 습격' 처음부터 다시보기






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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