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새 국무총리에 안대희 전 대법관을 내정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악화된 여론을 의식해 여권에서 거론한 '통합형' '정무형' 총리 대신 대선자금 수사를 맡아 법과 원칙대로 처리한 검사 출신의 '소신형'을 선택했다. 청와대는 세월호 사고로 드러난 우리 사회의 잘못된 관행과 공직사회의 적폐를 척결할 적임자라고 인선 배경을 밝혔다.
사흘 전 대국민 담화에서 '다시는 (세월호 사고 같은)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국가개조를 하겠다'고 강조한 박 대통령으로선 국민통합이나 야권과의 관계도 가벼이 볼 수 없지만 국가개조가 우선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10여일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도 의식했을 것이다. 그래서 권력에 맞서 불법 대선자금을 수사한 강골 검사 출신으로 이미지가 좋고 개혁작업을 이끌 추진력을 갖춘 인물을 선택한 것으로 판단된다.
안 후보자도 "국가와 사회의 기본을 바로 세우겠다"며 "대통령을 진정으로 보좌하기 위해 가감 없이 진언(進言)하겠다"고 밝혔다. 우리는 여기서 그의 '가감 없는 진언' 발언에 주목한다. 그동안 회의 때 대통령 말씀을 받아쓰기에 바쁜 장관들과 청와대 수석들에 대한 지적이 많아서다. 특히 안 후보자는 지난 대선 캠프에서 책임 총리ㆍ장관제를 성안한 인물이다. 국민은 헌법이 정한 국무위원 제청권을 행사하고, 대통령에게 여론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고 때로는 쓴소리도 하는 '책임총리'를 보고 싶다.
현실은 녹록치 않다.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과 안 후보자 모두 위계질서가 엄격한 검찰 출신으로 김 실장이 15년 선배다. 김 실장이 검찰총장이었을 때 안 후보자는 평검사였다. 대통령이 계속 비서실을 국정 중추기관으로 여기면 안 후보자가 '왕(王)실장'으로 불리는 김 실장을 넘어 행정부처를 통할하기 어려운 구조다.
세월호 참사 이후 2기 내각을 이끌 총리는 재난ㆍ안전 업무를 총괄하는 국가안전처와 정부조직ㆍ인사 기능을 맡는 행정혁신처를 산하에 둠으로써 권한이 더 커진다. 이럼에도 계속 '대독' '의전' '방패' 총리로 둘 것인가. 소신이 강한 안 후보자가 대통령과 불협화음을 낸다면 국정운영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 대통령 스스로 매사를 직접 챙기며 지시하는 만기친람(萬機親覽)에서 벗어나 총리에게 상응한 권한과 책임을 함께 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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