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몰 참사를 빚은 세월호의 실소유주인 유병언은 사진 작가로 활동하며 ‘아해’라는 예명을 썼는데, 이 표현은 이상(李霜, 1910-1937)의 시 ‘오감도 시 제1호’에서 땄다고 한다. 그런데 이 시가 표현하고 있는 풍경이, 마치 2014년 4월의 참혹한 풍경을 그린 듯이 보여주고 있어 새삼 관심을 불러 일으킨다.
13人의아해(兒孩)가도로로질주하오.
(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
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4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5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6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7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8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9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0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1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13인의아해는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아해와그렇게뿐이모였소.(다른사정은없는것이차라리나았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길은뚫린골목이라도적당하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
이상의 '오감도'
수수께끼같은 진술들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제대로 실감하지 못했다. 질주하는 도로가 무엇인지, 막다른 골목이 무엇인지 이제야 가슴 아프게 깨닫는다. 이 시 제목이 왜 오감도(烏瞰圖)인지도 알겠다. 저 무서운 아이와 무서워하는 아이를 위해 아무 것도 해주지 않은 채 공중에서 빙빙 헬기나 돌리는 것, 또 물밑으로는 내려가지 않고 해상에서 일없이 뱃머리나 돌리는 까마귀의 눈을 말하는 것이었구나. 오(烏)는 새(鳥)의 눈을 뺀 이미지다. 이상은 이 '눈이 없음'을 시의 착안으로 삼았다. 눈 없는 구원자인 어른들은 아이들이 미쳐 내달리는 것을 그저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이상은 13명의 아해를 골목에 뿌려놓으면서, 공포스런 시의 풍경을 만들어냈지만, 2014년 4월은 그보다 스무 배도 넘는 아해들을 물밑으로 보내놓고 까마귀처럼 구경만 하고 있었다. 그가 설정해놓은 '골목'이라는 공간의 숨막힘은 가라앉는 배 안의 풍경으로 바뀌면서 공포를 천배 만배로 늘여놓는다. 이상은 그 숫자들을 철회하면서 하나씩 희망을 줄여 무서운 아이와 무서워하는 아이를 구원하고 있지만, 우린 그렇지 못했다. 나중엔 길도 뚫었고 도로와 그 사건 자체도 백지화하고 있지만, 우린 잠수종 하나도 제대로 내리지 못했고 배의 창문도 제대로 깨지 못했다. '다른 사정은 없는 것이 차라리 나았소‘라는 괄호 안의 단언은, 아직도 기적을 전혀 만나지 못한 우리의 절망으로 뼈아프게 아로새겨진다. 이상은 비범한 선견지명으로 우리 사회가 낳을 이런 치명적인 과오를 오래 전에 들여다 보았던가.
이상의 '오감도'는 백지화되었을지 몰라도, 세월호의 오감도는 우리 시대의 가장 깊은 뇌리에 박혀 우릴 거듭 아프게 할 것이다. 그 세월호의 주인이 사진작가 '아해(兒孩)'라니, 이런 환장할 역설이 어디 있는가.
이상국 편집에디터·시인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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