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아카데미 영화상은 사상 최초로 흑인 감독의 작품이 작품상을 받았다는 점에서 화제가 됐습니다. 스티브 매퀸 감독은 고작 세 번째 장편 영화로 작품상을 거머쥐면서 기염을 토했습니다. 사실 이번 아카데미 영화상은 외국인들의 잔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작품상을 받은 스티브 매퀸 감독은 영국인이고 감독상을 받은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멕시코 출신이지요. 여우 주연상을 받은 케이트 블란쳇 역시 호주 배우입니다.
이처럼 미국의 영화계는 재능 있는 외국인들로 넘쳐납니다. 현재 가장 뜨거운 감독인 크리스토퍼 놀란이 영국인이고, 심지어 미국의 상징이라고 불리는 슈퍼맨 역에 영국 출신 배우가 캐스팅되는 일까지 있었습니다(맨 오브 스틸의 헨리 카빌).
헐리우드보다 더 외국인들이 활약하는 곳이 실리콘밸리입니다. 구글의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이 러시아 태생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이민자들이 넘쳐납니다. 이베이를 창업한 피에르 오미디아는 프랑스에서 태어난 이란 사람이고, 페이팔-테슬라-스페이스 엑스를 연쇄적으로 창업하면서 벌써 전설이 되어버린 엘론 머스크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태어난 캐나다 사람입니다.
현재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50개 벤처 기업 가운데 23개 기업이 이민자에 의해 창업됐을 정도입니다. 미국은 이렇게 전 세계의 재능을 끌어당겨 영화와 첨단 산업 분야에서 주도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모르시는 분이 많지만 우리나라도 지난해 10월 '창업비자' 제도를 도입하였습니다. 이전까지 외국인들은 취업비자를 통해 경제 활동을 할 수 있었는데 만약 창업을 하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 바로 비자가 만료돼 창업을 시도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법무부와 중기청은 창업비자 제도를 만들었고 그 결과 올해 1월 한 재미교포가 '창업비자 1호'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가야 할 길이 멉니다.
우선 창업비자 제도의 손질이 필요합니다. 출원에서 등록까지 걸리는 시간을 감안하면 외국인의 지식재산권 등록이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사람들과의 공동 창업을 허용하도록 요건을 완화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또한 외국인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창업 교육과 지원 프로그램이 마련돼야 합니다. 우리나라 이공계열 대학과 대학원에는 이미 상당한 규모의 외국인이 재학 중입니다. 이들이 창업을 진지하게 검토할 수 있는 지원 프로그램이 필요합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창업과 사업 전개, 그리고 회수 모두가 잘 이뤄지는 역동적인 창업 생태계가 확실하게 자리잡는 것이겠지요.
외국인들에게 매력적인 창업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면 그것은 외국인 창업자와 우리나라 모두에게 매우 좋은 일입니다. 창업은 기본적으로 일자리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경우 창업한 이민자 한 명이 미국인 세 명을 고용한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해외 진출이 쉬운 것도 장점입니다. 외국인과 우리나라 사람들이 함께 만드는 창업 기업은 국내에서 시작하더라도 그 나라로 쉽게 확장할 수 있습니다. 최근 새롭게 만들어지는 아이돌 그룹들에 중국이나 동아시아 출신이 포함돼 있는 것을 떠올리면 될 겁니다.
최근 한 보고서는 미국 잡지 포천이 선정한 500대 기업 가운데 200여개가 이민자에 의해 창업됐다고 밝혔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야후나 화이자, 유에스스틸 같은 기업들의 이름이 올랐습니다. 저는 우리나라에서도 응웬타오나 장강량과 같은 성공한 기업가를 만날 수 있기를 고대합니다. 그때쯤이면 길에서 종종 마주치는 외국인들에게 "창업하러 오셔서 고맙습니다"라는 반가운 인사를 나누게 되겠지요.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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