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진 성균관대 국정관리대학원 교수 "갈등 풀리려면 장(長)의 해결의지·태도 중요"
[아시아경제 이혜영 기자] 2013년 10월25일. 서울시 청사 앞에 한 중년 남성이 커다란 피켓을 목에 걸고 나타났다. 그런데 피켓에 큼지막하게 씌어 있는 글은 으레 보게 되는 항의와 비난이 아니었다.
재개발로 하루아침에 철거민 신세가 돼 무려 717일동안 같은 자리에서 1인 시위를 벌였던 이선형씨는 오히려 시장과 공무원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있었다.
2년 넘게 시위를 벌이던 그는 왜 갑자기 생각을 바꾼 걸까. 이씨의 '감사 시위' 뒤엔 강영진 성균관대 국정관리대학원 교수(53·사진)가 있었다.
강 교수는 '갈등 전문가'다.1996년 10년간 기자로 일하던 언론계를 떠나 유학길에 올랐다. 그는 산업화와 민주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함께 사는 사회가 열릴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투쟁의 시대에서 분쟁의 시대로 바뀌었을 뿐 갈등과 대립은 여전했어요."
강 교수가 '갈등'을 공부하기로 결심한 이유다. 국내 '갈등해결학 박사 1호'가 돼 한국으로 돌아온 후 강 교수는 갈등해결연구센터장과 서울시 갈등조정관을 차례로 맡으며 우리 사회를 깊숙이들여다봤다.
'갈등'을 연구하고 중재해 당사자 사이에 다리를 놓는 역할을 하며 한국의 갈등이 선진국과 다른 점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강 교수는 "어떤 사회든 갈등은 불가피하지만 한국사회는 겪지 않아도 될 것들을 지나오며 갈등으로 인한 사회비용이 많이 들고 있다"고 말했다.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선 '소통의 힘'이 발휘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소통을 하면 많은 문제가 해결이 될 수 있다"며 "1인 시위를 벌이던 이씨도 자기 같은 피해자를 다시 만들지 말아달라는 억울함에 대한 하소연을 했던 것"이라며 들어주는 자세를 갖고 먼저 다가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15일 발족식을 가진 제물포길 협의회에서도 공사에 반대하던 주민들이 가장 많이 지적했던 부분은 추진과정에서 소외됐다는 '박탈감'이었다.
강 교수는 정부나 행정기관이 갈등이 발생할 수 있는 과정에 이해 당사자들을 '제대로' 참여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청회나 의견수렴 과정을 거치긴 하지만 그 중 의미있는 참여를 끌어내는 경우는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대통령이나 기관장, CEO 등 '장(長)'이 갈등을 어떤 태도로 해결하려 하는지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중도집단이 없어 완충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이 없는 것을 아쉬운 점으로 꼽았지만 우리 사회가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고려대를 기점으로 번진 '안녕들하십니까'는 결국은 대학생들이 어른들을 향해 일갈하는 것이었어요. 이런 목마름, 문제의식이 지금도 살아있다는 것은 희망적인 일이죠."
이혜영 기자 itsm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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