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근철 특파원] 올해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전미경제학회(AEA) 연차 총회는 전례없는 악천후 속에서 진행됐다. 때마침 2일(현지시간)부터 미 동북부 지역에 몰아닥친 눈 폭풍으로 인해 비행편들이 대거 결항되면서 곳곳에서 차질이 빚어졌다.
2일 전야제 행사에서 개막 연설할 예정이었던 마르타 누스바움 시카고대 법학 및 윤리학 석좌교수도 끝내 대회장에 모습을 나타내지 못했다. 결국 개막연설은 화상연설로 대체됐다. 행사 기간 중에도 잔뜩 흐려 있던 하늘은 폐막일인 5일에도 짖궂은 진눈깨비를 내렸다.
매년 1월 초에 열리는 전미경제학회 연차 총회는 미국은 물론 전 세계 경제학자 및 경제정책 전문가들이 모여 새로운 연구 주제와 결과를 놓고 다양한 의견을 펼치는 장이다. 따라서 매년 총회에서 중점적으로 다뤄지는 관심사는 자연스럽게 그 해의 경제와 경제관련 학계의 화두가 되게 마련이다.
올해 회의에선 단연 향후 미국은 물론 글로벌 경제가 나아가야할 출구전략이 으뜸 관심사로 떠올랐다.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당장 이번 달부터 양적완화 축소를 시작하면서 이는 막연한 연구주제가 아니라 당장 해결해야할 현실 과제로 다가온 것이다. 바꿔 말하면 2008년 금융위기의 진원지가 됐던 미국에서부터 어두운 불황탈출의 서광이 비추기 시작한다는 의미다.
실제로 이번 연차총회에서 올해 미국 경제는 상당히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지난 3일 연설자로 나선 벤 버냉키 FRB의장은 미국의 경제 전망에 대해 낙관적인 견해를 밝히며 “성장 속도가 더 빨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레이건 정부 시절 경제보좌관을 지냈던 마틴 펠드스타인 하버드대 교수도 “2014년에는 성장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FRB의 비전통적 경기부양 정책을 줄곧 비판해온 존 테일러 스탠포드대 교수마저도 이에 동참했다. 그야말로 이견이 없을 정도다. 날씨로 따지자면 봄이 곧 찾아올 것 같은 분위기였다.
하지만 다양한 토론과 발표가 이어지면서 연차 총회의 무게중심은 점차 이동하고 있었다. 관심은 그 다음 전개 과정과 경제회복의 내용이었다. 상당수 학자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향후 미국과 글로벌 경제는 여전히 상당한 불확실성에 놓여있다”는 데 공감을 표시했다.
버냉키 의장 역시 그의 연설 말미에 “향후 경제 회복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역풍이 언제든 불 수 있어 경기 부양을 소홀히 해선 안된다”는 안전 장치를 심어두었다.
대럴 더피 스탠포드대 교수는 “장기간 지속된 저금리가 다양한 시장에서 거품을 만들었기 때문에 FRB가 국채 매입을 줄이면 금리가 오르면서 시장이 큰 혼란에 빠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마디로 글로벌 경제에 봄날을 짐작을 할 수 있는 신호는 오고 있지만 아직 그 과정은 멀고도 불확실하다는 경고인 셈이다. 경제회복(봄)은 다가오고 있지만 그 시기는 아직 멀고 험난한 고비를 성공적으로 넘겨야 비로소 볼 수 있다는 메시지가 폐막일인 5일 하루종일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필라델피아(미국)=김근철 특파원 kckim10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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