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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스토리 인물史]백수건달 황제 유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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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스토리 인물史]백수건달 황제 유방 박종구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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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고조 유방(劉邦ㆍBC 247~195)은 장쑤성 패현에서 태어나 진시황 사후 어지러운 천하를 평정하고 400년간 이어진 한 제국을 창건하였다. 유방은 태어날 때부터 용모가 특이하여 콧날이 높고 이마는 튀어나와 얼굴이 용과 닮았으며 왼쪽 허벅지에 72개의 검은 점이 있었다. 진나라 타도 명분으로 군사를 일으켜 패공이라 칭하였다. 초나라의 항우 군대와 함께 반진 연합세력을 구축하였다. 항우보다 먼저 진의 수도 함양을 함락시켰고 BC 206년 실력자 항우로부터 한왕에 봉해졌다. 천하 패권을 놓고 항우와 대결하여 해하의 결전에서 이겨 BC 202년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루었다.


젊어서는 백수건달이었고 학문도 변변치 않은 유방이 황제에 오른 것은 그의 뛰어난 용인술(用人術) 덕이었다. 그는 지식인을 경멸하여 누워서 학자들의 인사를 받고 선비가 쓰는 모자에 오줌을 누기도 하였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의견을 잘 경청하고 인재를 적재적소에 잘 활용하였다. 미관말직의 한신을 대장군에 발탁하여 군권을 맡긴 것이 천하통일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당 태종 이세민이 "한이 천하를 얻은 것은 오로지 장량의 책략 덕분"이라고 칭찬한 전략가 장량을 휘하에 두게 된 것도 그의 인간적 매력 덕분이었다. 생사의 고비에서 여러 차례 기책을 내놓아 그를 살려낸 진평의 활약도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는 유방이었기에 가능했다. 이처럼 방대한 인재집단을 구축하여 잘 아우른 것이 천하통일의 가장 큰 비결이었다. 천하통일 후 그는 한신에게 "왜 내가 황제가 되고 그대는 장수일 뿐인가"라고 물었다. 한신은 "폐하는 병사를 다루는 것은 저만 못하지만 장수들을 잘 다룰 줄 아시기 때문"이라고 답하였다. 그는 황제의 그릇과 장수의 그릇이 다름을 잘 체득하였다.

유방은 남의 충고를 잘 받아들였다. 함양을 함락시킨 후 진나라 궁전에 들어가 장엄한 전각, 진귀한 보물, 후궁에 마음을 빼앗겨 정사를 돌보지 않았다. 장량은 "지금 향락에 빠지면 진나라는 어제 망했지만 대왕은 내일 멸망할 것입니다. 어찌 한때의 즐거움 때문에 그간의 공을 무너뜨리려 합니까"라고 충언하였다. 그는 과감히 아쉬운 마음을 털어내고 함양을 떠났다.


유방은 또한 민심을 잘 수습하였다. 진나라 백성들에게 가혹한 법을 폐지하고 세 가지 법령만을 약속하였다. 살인한 자는 사형에 처하고,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도적질을 하면 그 정도에 따라 처벌한다는 약법삼장이 그것이다. 이로써 단숨에 민심을 수습하여 뒷날 항우와의 싸움에서 강력한 후원세력을 확보하게 되었다. 그가 자신보다 세력이 강한 항우를 꺾은 비결은 무엇일까. 천하평정 후 고조는 항우가 천하를 잃은 이유를 신하들에게 물었다. 신하 고기와 왕릉은 답하기를 "폐하는 부하들이 성과 땅을 공략하면 이를 그들에게 주어 천하와 이로움을 같이 하였다. 항우는 재능을 시기하고, 공이 있는 자를 해치며 현자를 의심했다. 싸움에 이겼어도 부하들에게 이로움을 주지 않았다. 이것이 천하를 잃은 이유다". 그는 입버릇이 나쁘고 품위가 없었다. 사람을 업신여겼다. 그러나 부하들의 공적을 인정하고 재물과 땅을 주기를 아까워하지 않았다. 그는 "승리를 천리 밖에서 결정하는 데는 장량만 못하다. 국가와 백성을 진무하는 데는 소하만 못하다. 백만 대군을 이끌고 싸우면 반드시 이기고 공격하면 반드시 쟁취하는 데는 한신만 못하다. 이들을 잘 쓴 것이 천하를 장악할 수 있었던 이유다"라고 평하였다.

유방은 중국 역사에서 공신 대량 숙청이라는 악습을 처음 실행한 군주다. 초왕 한신을 역모로 몰아 회음후로 강등시키고 결국에는 죽였다. 토사구팽 시킨 것이다. 한신은 삼진을 평정하였고, 조ㆍ제ㆍ연 3국을 멸하였으며 해하에서 항우를 패사시킨 큰 공을 세웠지만 그에게는 가장 큰 우환거리였다. 천하통일에 큰 공을 세운 양왕 팽월, 회남왕 경포도 이런 연유로 주살되었다. 연왕 노관도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백수건달에서 황제가 된 유방은 용인술의 대가였다. 결국 인재를 잘 쓰고 잘 내침으로써 천하를 움켜쥐고 지킬 수 있었다.






박종구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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