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낮과 밤은 축구 소식으로 가득했다. 7일 새벽 진행된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조 추첨 때문이다.
한국은 러시아, 알제리 그리고 ‘원조 붉은악마’ 벨기에와 함께 조별 리그 H조에 편성됐다. 조 추첨 결과가 워낙 큰 뉴스여서 뒤로 밀렸으나 한국은 6일 새벽 2017년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 남자 월드컵을 유치했다. 8일 새벽에는 독일 분데스리가 레버쿠젠에서 뛰는 손흥민의 득점 소식이 전해졌다. 리그 7호 골이자 시즌 9호 골이었다. 곧이어 오전에는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이 FIFA 여자 월드컵 유치에도 도전하겠다는 뜻을 밝혔단 브라질발 기사가 나왔다.
외국에서 워낙 큰 뉴스들이 전해져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올 시즌 K리그 챌린지(2부 리그) 1위의 상주 상무는 K리그 클래식(1부 리그) 12위의 강원 FC를 승강 플레이오프 1, 2차전 합계 4대 2로 꺾고 2014시즌 K리그 클래식으로 승격했다. 제도 도입 뒤 첫 승격의 주인공이다. 모든 소식이 나름대로 의미를 갖고 있겠지만 승강 플레이오프는 세계무대로 뻗어가는 한국 축구의 내실을 다질 수 있단 점에서 더욱 큰 의미가 있다.
축구 올드 팬 가운데에는 1970년대 중반 한국실업축구연맹이 디비전 시스템을 도입하려 했던 일을 기억하는 이가 꽤 있을 것이다. 1975년 실업연맹에 가입한 팀은 한국전력, 한국자동차보험, 포항제철, 기업은행, 조흥은행, 외환은행, 국민은행, 주택은행, 신탁은행, 산업은행, 상업은행, 서울은행, 제일은행, 한일은행, 농협, 철도청, 육군, 해군, 공군 등 19개나 됐다. 포항제철은 올 시즌 K리그 클래식과 FA컵 우승을 거머쥔 포항 스틸러스의 뿌리다.
은행 팀이 많았던 건 장덕진 당시 대한축구협회 회장의 주도 아래 1969년부터 금융단 축구가 활성화된 결과였다. 올 시즌 K리그 클래식 준우승에 대한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난 김호곤 감독은 고교 졸업 뒤 상업은행 창단 멤버로 들어갔다가 연세대학교에 진학, 1970년대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중앙 수비수로 성장했다.
아무튼 이들 19개 팀은 그해 전체 팀이 모두 돌아가며 한 차례씩 총 171경기를 치렀다. 경기 일수만 80일이 넘었다. 모든 팀이 돌아가며 경기를 갖는 라운드 로빈 방식의 대회를 치른 건 국내 축구 사상 이때가 처음이었다. 이유가 있었다. 1976년 리그를 1, 2부로 나누기 위해 순위를 가려야 했다.
그러나 리그가 진행되면서 유럽과 남미의 선진적 시스템을 도입해 실업 축구의 내실을 기하자던 애초의 취지는 퇴색되고 말았다. 적지 않은 돈을 들여 축구부를 운영하는 팀들 가운데 일부가 2부 리그로 떨어지면 축구부를 해체하겠다는 자세를 보였다. 그 무렵 축구, 야구 등 인기 종목의 실업팀들은 오늘날의 프로팀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앞에서 언급한 김 감독은 요즘으로 치면 프로팀의 ‘고졸 신인’이었다.
축구 팬들의 무관심도 한몫을 했다. 주경기장인 효창구장은 시내에 있는데도 서울 지역 거의 모든 곳에서 버스를 한, 두 차례 갈아타야 갈 수 있었다. 교통도 불편했지만 단기간에 우승팀이 결정되는 방식에 익숙했던 당시 축구 애호가들에게 장기 레이스는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하루 평균 관중이 200명을 넘지 못했다.
실업연맹은 결국 1976년 디비전 시스템을 도입하겠다는 계획을 철회했다. 1975년 성적을 뒷날을 위한 자료로 남기겠다고 했으나 1983년 프로인 슈퍼리그가 출범하기까지 실업 축구의 1, 2부 리그는 시행되지 않았다. 그리고 아마추어 국민은행이 포함된 다소 엉성한 슈퍼리그가 출범한 뒤에도 30년 동안 디비전 시스템에 의한 승강제는 이런저런 이유로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 주말 쏟아진 축구 관련 소식을 보면서 한국 축구의 외화내빈이 우려됐다. 이를 위해서라도 이번에 시행된 1, 2부 리그간 승강제가 향후 2, 3부간 그리고 3, 4부간으로 이어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신명철 스포츠 칼럼니스트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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