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혜원 기자] "정보통신기술(ICT)과 산업 연계는 시대적 추세입니다. 전력 산업도 마찬가지죠. 하지만 문제는 비용입니다. 지금처럼 전기요금이 저렴하다면 기업 입장에선 굳이 전기 아낀다고 수십억원을 들여 설비 투자할 이유도 없지 않나요? 돈도 안 되는데."
정부가 18일 에너지 정책의 패러다임을 공급 중심 방식에서 벗어나 수요 관리형으로 전환하겠다며 내놓은 정책은 겉보기는 반지르르하다. 3조5000억원이라는 신(新)시장이 열릴 것이라는 청사진은 매력적이고, 최근 지독한 전력난을 겪은 터라 국민 입장에서도 반가울 만한 대책이 눈에 띈다.
이를 테면 내년부터 '스마트플러그' 기능이 내장된 에어컨을 구입하면 전기 사용량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면서 에어컨을 쓸 수 있다고 한다. 적어도 전기요금 누진제 걱정은 덜겠다는 취지다. 자발적으로 수요를 억제하란 얘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번 에너지 정책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설익은 대목이 적지 않다. 기업 입장에서는 에너지저장장치(ESS)와 에너지관리시스템(EMS) 등 설비를 도입하라는 일종의 강요처럼 보인다.
ESS나 EMS는 초기 투자비가 10억원 이상 필요하다. 현 시점을 기준으로 하면 투자비 회수까지는 11~12년이 걸린다. 정부는 우선 대기업을 중심으로 ESS 투자를 유도할 방침이지만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는 사업이란 이유로 대기업의 참여도 저조할 뿐 아니라 중소기업은 엄두도 못내는 상황이다. 정부는 이런 불만을 '인센티브'란 당근으로 해결하겠다고 한다. EMS의 경우 기술력 부족으로 지난해까지 우리 기업의 도입 비율은 2.9%에 불과했다.
이번 대책은 지난 5월28일 "IT 기술을 이용해 실시간으로 자신이 얼마의 전력을 소모하는지 알려주고 스스로 아낄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 달라"는 대통령의 '기침소리' 한 번에 3개월 만에 '뚝딱' 만들어졌다.
지난해 기준 2200억원에 불과한 시장을 5년 만에 16배인 3조5000억원으로 키우겠다는 '숫자놀음'보다는 근본적 대책을 찾아야 할 것이다. "지금과 같은 전기요금 체제에서는 개인이나 기업 등 소비자의 자발적인 투자 동력을 찾기 어렵다"는 전력 당국자의 말처럼 말이다.
김혜원 기자 kimhy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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