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유인호 기자]
세계 각국에서 보호무역주의가 부활 조짐을 보이면서 국내 산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세계 경기 불황속에서 미국, 인도네시아 등의 각국에서 한국산 제품을 겨냥한 무역규제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기 때문이다.
석유화학, 철강재, IT, 자동차 등 우리의 주력 수출 품목들이 집중 포화를 맞으면서 수출 전선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경기 침체로 보호무역 격화=9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 7월 말 기준 한국산 제품에 대한 전세계 무역규제는 132건에 달했다. 이중 규제에 들어간 것이 97건이며, 35건은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국가별로는 인도가 총 24건으로 1위 규제국이며, 중국(17)ㆍ미국(12)ㆍ터키(10)ㆍ브라질(10)ㆍ인도네시아(8)ㆍ호주(8)ㆍ파키스탄(7)ㆍ태국(5)ㆍ캐나다(5) 등의 순이다. 북미, 유럽 등 선진국 뿐만 아니라 아시아, 남미 등 신흥 경제국에서도 광범위한 규제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품목별로는 우리의 주력 수출산업인 화학ㆍ철강이 전체의 90건(68.1%)에 달한다.
한국산 제품에 대한 반덤핑 제소도 올들어 급증하는 추세다. 2008~2011년만 해도 연 17~19건이었으나 지난해에는 25건으로 껑충 뛰었다. 올해는 7월 말 현재 106건에 달한다. 한국 상품에 대한 반덤핑 제소가 1년도 안돼 4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이처럼 전세계적으로 무역규제가 늘어나는 것은 경기 불황 장기화로 각국 산업이 어려워지면서 보호무역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각국 정부들이 자국 산업보호를 주장하는 자국 내 기업들의 호소를 외면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한국 제품 집중 포화=문제는 '메이드 인 코리아' 상품을 표적으로 삼는 무역규제가 반덤핑 제소, 특허 소송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전자ㆍ철강ㆍ화학 등 한국의 주력 수출업종들이 각국의 주요 무역규제 대상에 오르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는 특허소송, 반덤핑 조치 등 다양한 방식의 보호무역주의 조치를 통해 한국 기업들을 노골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이는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이후 미국내에서 IT, 자동차, 철강재 등 한국산 제품의 시장 점유율이 확대되면서 미국산 제품의 위치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3년 넘게 이어져온 삼성전자와 애플 간의 특허 맞소송전도 미 정부가 개입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3일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아이폰과 아이패드 일부 제품 수입 금지 조치에 거부권을 행사했다.이는 보호무역주의 카드를 꺼내든 것으로 해석된다.
미 정부는 최근 세아제강, 현대하이스코, 휴스틸 등 10개사의 유정용 강관에 대한 반덤핑 조사에 착수했다. 아울러 미 국제무역위원회가 삼성전자 LG전자 등 한국 전자업체가 수출하는 세탁기에 반덤핑관세를 부과한 것에 대해 한국 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에 미국 정부를 제소하기로 했다.
미국 뿐만이 아니다. 호주 정부는 지난 달 29일 한국산 전력 변압기 반덤핑 조사에 착수했다. 브라질도 지난달 16일 부터 한국산 압연실리콘철강 반덤핑 규제를 개시했다.
중국은 지난달 19일 한국산 솔라급 폴리실리콘에 임시 반덤핑 관세를 부과했으며, 인도는 한국산 아세톤에 대한 반덤핑 규제를 1년간 더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정부 차원 대책 필요=이같은 무역 규제 조치에 우리 기업들은 아직 까지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기업 차원에서 현지 정부에 대응하는 것이 쉽지 않은 탓이다. 더구나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에서 반덤핑 조치는 회원국의 권한이라고 명시돼 있고, 자유무역협정도 WTO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한국이 맺은 FTA 협정에서 각종 보호무역 조치와 관련해 사전에 정부간 정보를 주고받는 협의채널을 마련하는 장치가 있지만 협정 자체로 보호무역을 막는 데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우리 정부가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 차원의 경기 흐름이나 수출국 동태 파악 뿐만 아니라 현지 수출시장의 경기산업 동향 등을 적극적으로 모니터링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조성대 국제무역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글로벌 경기 전망을 볼때 내년 까지 각국의 반덤핑 조사 등이 급증세를 지속할 것으로 보이는 등 우려스러운 상황이다"며"이번에 한국 정부가 WTO에 한국산 세탁기 관련 제소를 한 것 처럼 이를 하나의 카드로 사용하는 등 정부가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인호 기자 sinryu007@asiae.co.kr
유인호 기자 sinryu00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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