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라이존 랜달 밀히 부회장 기고..벌금 없이 수입 금지한 ITC의 맹점 지적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미국 유력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미 국제무역위원회(ITC)가 관련된 애플과 삼성전자의 특허권 분쟁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개입해야 한다는 요지의 글을 실어 눈길을 끌고 있다.
WSJ 기고는 미 최대 통신업체 중 하나인 버라이존 커뮤니케이션스의 랜달 밀히 부회장이 쓴 글이다.
밀히 회장은 대다수 미국 소비자들은 ITC에 대해 생각하는 일이 없었지만 조만간 ITC의 존재를 분명히 인식하게 되는 엄청난 사건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으로 글을 시작한다.
ITC는 지난 6월 삼성전자가 애플을 상대로 낸 스마트폰 특허 침해 소송에서 삼성전자의 주장을 대부분 받아들여 애플의 삼성전자 특허 침해를 인정, 애플 제품의 미국 수입을 금지토록 결정했다. 애플이 중국의 팍스콘 공장에서 조립한 애플 제품을 미국으로 들여올 수 없다는 아이러니한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미 대통령은 ITC의 결정에 대한 수용 여부를 60일 안에 결정해야 한다. 만약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지난 6월 ITC 결정에 대해 반대 입장을 표명하지 않으면 ITC의 결정은 내달 5일부터 효력을 발휘한다.
ITC는 특허, 상표권, 저작권 침해와 같은 불공정 무역에 대해 조사하는 미 연방 기구다. 최근 스마트폰과 같은 첨단 정보기술(IT) 제품들이 등장하면서 ITC의 존재감이 커지고 있다.
지난 15년간 ITC가 개입한 지적재산권 분쟁은 네 배로 늘었는데 이중 대부분이 스마트폰과 관련된 것이었다. 지난해 ITC가 개입한 지적재산권 분쟁은 40건이었다. 2011년 69건에 비해 크게 줄었지만 1998년 11건에 불과했던 것을 감안하면 최근 ITC 관련 분쟁은 급증한 것이다.
ITC는 단 한 건의 특허 침해만 찾아내도 해당 제품의 수입을 금지할 수 있다. 하지만 벌금을 물릴 수는 없다. 바로 여기에 ITC 결정의 맹점이 있다. 정당하게 비용을 지급하고 특허를 이용하려는 기업의 선량한 의도 조차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위험이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 2006년 앤서니 케네디라는 이름의 판사는 수입을 금지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벌금을 물리는 것이라며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밀히 부회장은 아예 특허료 지급 의도 조차 차단함으로써 혁신이 이뤄지지 않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으며 이는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장려한다는 특허권의 본래 취지에도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맹점이 있어서인지 1987년 이후 지난 25년간 미 대통령이 ITC의 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 좀더 기한을 늘려 지미 카터 대통령 시절까지로 확대할 경우, ITC의 결정에 대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사례는 있지만 이 경우에도 특허권과 관련된 것은 아니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만약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는다면 미국 소비자들은 애플 제품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당하게 된다.
따라서 밀히 부회장은 결론적으로 ITC가 관련된 특허 소송은 너무나 값비싼 대가를 치르는 것이며 따라서 오바마 대통령이 개입해 ITC의 결정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은 정책상의 이유로 ITC의 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밀히 부회장은 백악관이 특허 분쟁에 대한 분명한 원칙을 제시할 필요도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허권 보유자가 기술을 독자적으로 실행하지 않았을 때 ▲특허권 보유자가 합리적인 조건으로 특허권 사용을 허가했을 때 ▲부품에 대한 특허권 침해가 전체 생산품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지 않을 때 등의 세 가지 원칙에 따라 대통령이 ITC 결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병희 기자 n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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