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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지방방송 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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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파티는 입식(立式)인 반면 우리의 잔치를 비롯한 대부분의 모임 문화는 좌식(坐式)이다. 술잔을 들고 어슬렁거리며 몇 명이서 둘러서서 얘기를 나누는 장면들을, 할리우드 영화는 우리에게 여러 번 보여 줬다. 좌중의 이야기가 재미없으면 슬쩍 딴 데로 가면 된다. 파티 장소 전체는 자율학습을 하는 아이들의 교실처럼 소란스럽고 그 소음 사이사이에 저쪽 무대에선 열심히 연주음악을 넣어 준다. 파티에서 내가 흥미롭게 생각하는 것은, 대화 상대를 자유롭게 고르는, 그 형식적인 측면이다.


우린 이게 안 된다. 한 번 앉으면 그만이다. 어쩌다 좌석이 배치되었는데, 옆 사람이 좀 서먹하거나 대화의 공통화제가 없는 사람이라면, 모임이 영 재미없어질 때가 있다. 그렇다고 낯익은 사람만 찾아 억지로 자리를 고집하다 보면, 채신머리 없는 사람으로 보이게 될 수도 있다. 요컨대 좌식은 토론 무리를 고르는 일이 쉽지 않다. 당연히 대화할 거리도 빈약해진다. 서로 멀뚱멀뚱 앉아 있기가 민망하니 음식을 권하고 술을 따르는 일에 치중하게 된다. 술기운에 낯이 풀어져서 대화의 물기가 돌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우리의 토론은 그래서 자주 술김에 털어놓는 '오버한 말'들의 교환이거나, 혹은 무난한 공식적인 화제들을 우려내는 방식의 겉도는 대화일 경우가 많다. 앉은 무리무리의 작은 토론장이 별로 재미없다 보니, 전체 회식자리는 자주 '사회자'에 의지하게 된다. 한 사람의 입이 시종일관 문제 제기를 하고 결론을 내리는 동안, 수많은 좌중의 귀는 그걸 묵묵히 들어야 한다. 어떤 때는 한마디 말도 뱉지 않은 채 회식하고 오는 경우도 있다.


우리가 왜 토론에 약하고, 논쟁과 전쟁을 잘 구분 못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파티와 잔치의 특징에서도 찾을 수 있다. 엉덩이를 붙이고 일방통행의 말하기와 듣기로 일관하는 잔치는, 얼핏 보면 많은 대화를 나눈 듯이 보이나 실은, 수다와 침묵이 그저 동석한 것일 뿐이다. 우린 이 희한한 구술(dictate) 체제에 익숙하며, 각종 술자리의 독재자(dictator)에 대해서도 별 거부감이 없다. 주변이 시끄러워지면 대번 이 얘기부터 나온다. "어이, 지방방송 꺼." 서양의 파티는 오로지 지방방송들의 합계이며, 우린 윗사람이 엄격히 통제하는 '중앙방송 술자리'다. 술자리에서 '원치 않는 지방방송'이 계속되면, 이쪽 독재자님의 재떨이가 날아가는 풍경. 우리가 논쟁이라고 벌인 좌판 속에선 과연 없는가.
 
<향상(香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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