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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정치적 포르노'의 역겨움

시계아이콘읽는 시간01분 08초

빌 클린턴이 영특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나는 그가 어느 인터뷰에서 했던 말을 보면서 확신하게 됐다. 그는 대통령의 덕목을 묻는 질문에 "한 나라를 전체로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전체로서 보는 안목. 그거야말로 지도자에게 필요한 덕목 중의 덕목임을 그는 잘 알고 있었던 듯하다. 그런데 사실 이게 어디 정치에만 해당되는 얘기겠는가. 어떤 사물이든, 어떤 사안이든 총체로서 바라볼 때라야 온전히 볼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사실은 신성하다'는 말에 대해 따져 볼 필요가 있는데 천상의 복음처럼 '신성성(神聖性)'의 보위에 올라와 있는 이 금언은 그러나 매우 신중하게 받아들여져야 한다. 가령 어떤 사안에 100개의 사실이 있다고 할 때 그중 99개의 팩트를 얘기해서는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오히려 나머지 한 개의 팩트에 진실이 담겨 있을 수 있다. 바로 여기에 전체를 놓치고 부분에 갇히는 것의 위험이 있고, 사실이 진실과 충돌하는 역설이 있으며, 세부에 충실함으로써 전체를 부실케 하는 함정이 있다. 사실은 진실의 빛에 비춰 봐야 하며, 부분은 전체의 맥락 속에서 읽어야 하며 말단은 본질에 비춰서 봐야 한다. 그렇지 않고 세부와 부분을 전체인 양, 진실인 양 내세운다면 이는 인체의 한 국부(局部)를 그 전부인 듯 확대경을 들이대는 포르노와 다름없는 것이다.

남북정상 간의 대화를 놓고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동은 그런 점에서 '정치적 포르노'다. 이 공방에 찬반을 표할 생각은 없다. 다만 이 사안을 전하고 해석하는 그 수준과 시각에서 포르노적 천박성을 발견한다.


포르노를 밀실에서 '건전한' 취미로 즐기는 건 좋다. 그러나 이를 공중에 유포하는 건 정치적 음란행위다. 이 '정치적 포르노'는 일부 언론과 정치권의 합작으로 제작 유통되고 있다. 언론의 선창에 정치권이 합창하며, 정치권이 지른 불에 언론이 기름을 붓는다.

이들은 무지든 고의든 하나의 사실, 하나의 부분을 전체라고 강변한다. 이들은 고학력자들이지만 실은 '이성적 문맹'이다. 이들은 결국 자신들이 떠받드는 팩트의 신성함을 모독하는 죄를 저지르고 있다. 특히 정치권과 합작해 포르노를 유포하는 언론을 언론이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굳이 말한다면 언론이라기보다는 전혀 우습지 않은 농담을 하려 애쓰는 '언농(言弄)'일 뿐이다. 이런 언론에 대해 마이클 잭슨도 꾸짖지 않았던가. '당신들은 언론도 아니다-유아 낫 얼론(언론)'이라고.






이명재 사회문화부장 pro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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