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연미 기자] 아베노믹스는 '질긴 고기'다. 공격적인 돈살포에 기댄 아베노믹스가 성공하면 우리 기업들이 타격을 받지만, 실패할 경우에도 유탄을 맞기 쉽다. 미국이 양적완화 중단 시점을 고르고 있는 지금, 일본 경제마저 흔들리면 세계 금융시장이 다시 요동칠 수 있어서다. "아베노믹스는 잘 돼도 문제, 못 돼도 문제"라는 신제윤 금융위원장의 말은 아베노믹스를 보는 우리 정부의 복잡한 심경을 담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일본 정부는 지난 5일 아베노믹스의 세번째 화살을 쏘아 올렸다. 발표 시점은 시장의 예상을 앞질렀다. 아베노믹스에 대한 불신이 아베 내각을 조급하게 만들었다고 시장은 분석했다. 증시 폭락과 채권시장의 불안 속에서 7일 기준 일본의 CDS프리미엄은 한 달 만에 19.54bp(1bp=0.01%포인트) 급등했다. CDS 프리미엄이 오른다는 건 일본 경제의 부도 위험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의미다.
아베 내각이 발표한 성장전략은 전력과 의료, 사회기반시설 정비 등 공공분야의 규제를 풀어 민간 투자를 촉진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한 특별 경제구역을 설치하고, 4만5000달러 수준인 1인당 국민소득(GNI)을 10년 안에 6만달러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야심찬 계획도 넣었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구체적인 투자 유치 수단이 빠져 있고, 법인세 인하 등 기업들의 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당근'이 없다는 평가가 나왔다. 소비 심리를 되살릴 대안도 제시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성장 전략에 대한 실망감은 시장을 흔들었다. 당일 오전 소폭 상승했던 주가는 성장 전략이 공개된 뒤 폭락했다. 이날 닛케이 지수는 전날보다 3.83% 하락한 1만3014.87포인트로 장을 마쳤다. 5월 23일(7.32%)과 5월 30일(5.15%)보다는 하락폭이 적지만 2주 사이 세 번이나 증시가 급락하면서 시장의 불안감이 확산됐다. 엔화 환율은 강세로 돌아서 달러당 100엔 선이 무너졌다. 전일 100.03엔이던 엔달러 환율은 이날 99.06엔을 기록했다.
국제 신용평가회사들은 세 번째 화살을 통해 골격을 완성한 아베노믹스를 "일단 지켜보겠다(wait & see)"는 입장이다. 이들은 아베노믹스가 일본의 재정난을 가중시킬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무디스는 "성장 이전에 국채금리부터 오를 가능성"을 우려했고,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역시 "조달금리가 올라 국가 재정이 악화되면 신용등급을 강등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피치도 "국채금리가 급격히 올라 차입 여건이 나빠지면 일본의 국가 신용 등급을 한 단계 이상 낮출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놨다.
향후 신평사들의 움직임은 일본 뿐 아니라 전세계 경제에 상당한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평가가 국제 금융시장에서 사실상의 공인 성적표 노릇을 하는 탓이다.
S&P는 2011년 4월 일본의 신용등급 전망을 AA- '부정적'으로 강등한 상태다. 2012년 5월 피치 역시 일본의 신용등급 전망을 A+ '부정적'으로 내려잡았다. 무디스는 아직까지 일본에 우리나라와 같은 Aa3 '안정적' 등급을 주고 있지만, 향후 전망은 예단하기 어렵다. 신용등급 전망을 낮춘다는 건 가까운 미래에 신용등급도 내려잡을 수 있다는 신호다.
박연미 기자 ch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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