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지난해 영화 '26년'이 상영됐다. 광주 학살의 피해자들을 현재적 시점에서 다룬 영화다. 당시 영화를 보면서 내내 가슴 한 구석이 답답했다. 26년, 아니 7년이 더 지나 33년 전 발생한 광주 학살의 후유증을 우리는 왜 아직도 말끔히 떨쳐내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광주 학살이 '민주화 항쟁'으로 인정받고, 피해자들이 보상을 받고, 국가 기념일로 지정돼 대통령이 참석하는 공식 기념 행사가 열려도, 후미지고 음습했던 망월동 묘지가 콘크리트로 단장됐어도, 왜 아직 우리 사회는 광주 학살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까?
그렇다. 다른 이유도 있지만, 가장 큰 것은 영화에서처럼 바로 '그' 때문이다. 구체적으론, 그가 부정하게 모은 재산을 법원의 명령에 따라 국고에 귀속시키지 않고, 자식들에게 몰래 넘긴 후 경찰들의 두터운 경호를 받으며 '대궐'같은 집에서 살면서 가끔 골프ㆍ양주 파티도 즐기는 등 호의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내 재산은 29만원 뿐"이라고 말해 국민들의 공분을 불러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그의 자식들의 재산은 그야말로 '천문학적'이다. 공식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재산만 해도 각자 수백억원대다. 최근 조세피난처에 유령회사를 설립해 아버지의 비자금 일부를 세탁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그의 큰 아들은 국내 굴지의 출판사 지분과 부동산만 1600억원대다. 큰 아들의 부인과 손주들도 수십억대의 서울 시내 건물을 갖고 있는 알짜 부자들이다. 둘째 아들은 하객 30여명에게서 받은 축의금 16억원을 167억원으로 불린 '전설적' 재테크의 귀재다. 셋째 아들도, 딸도 마찬가지다. 최근 한 지인으로부터 미국 최대 대형마트 중 한 곳이 딸의 숨겨진 재산이라는 '설'이 재미 교포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다.
정상적인 직장이나 사업을 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그의 자식들이 어떻게 이렇게 큰 부자가 됐을까? 그의 숨겨진 비자금 덕일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그는 그럼에도 2003년 재판에서 판사가 "자식들이 왜 추징금을 대신 내주지 않느냐"라고 묻자 "그들도 겨우 먹고 사는 수준"이라고 태연히 말했다. 도무지 한 국가의 대통령을 역임한 사람과 그 일가라고는 볼 수 없는, 저열하고 후안무치한 도덕적 감수성이다.
지난달 5.18 33주년을 맞아 잠시 주목받았던 그의 추징금 미납과 지나친 경호 예우 등의 문제가 인터넷 언론 '뉴스타파'의 조세회피처 폭로로 다시 세간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정상적인 국가라면, '상식'이 통하는 사회라면, 비자금을 몰래 자식들에게 증여한 후 추징금 납부를 거부해 온 그의 행태를 진작에 응징했어야 한다. 수많은 인명을 학살하고 천문학적인 비자금을 빼돌린 전직 대통령을 그대로 놔둔 이 나라가 과연 현대 민주주의ㆍ법치 국가가 맞나 싶다.
그만큼 우리 사회 기득권 세력의 체제가 강고하다는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 친일파 후손이 떵떵거리며 잘 살고,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은 가난에 시달리고 있는 현실이 왜 그런지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잘못된 것이 있으면 하나씩 하나씩 시정하도록 노력해야 이같이 왜곡된 현실들이 바로잡혀 나간다. 국회에서 계류 중인 그의 비자금 강제 징수ㆍ예우 박탈 관련 법안들의 통과 여부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김봉수 기자 bs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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