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착상태 길어지면서 남남갈등 심화 우려도
[아시아경제 신범수 기자, 오종탁 기자] "민간이나 당국이냐." 대화의 모양새를 놓고 남북이 양보 없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이런 교착상태로 인해 불리해지는 쪽은 오히려 남한이라는 분석이 많다. 원칙을 크게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레 대화 국면으로 이끌어갈 방법을 우리 정부가 모색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이 입을 모은다.
31일까지 북 측에서 보내온 메시지를 돌아보면, 북한의 대화 의지는 점차 강해지고 심지어 '저자세'를 불사하는 태도 변화가 읽힌다. 전날 조선중앙통신 논평이 대표적이다. 논평에서 "지금의 대결상태는 너무나도 괴롭다"고 했다. 대화를 통한 개성공단 정상화, 남북관계 개선에 '몸이 달았음'을 자인하는 건 지난 발언의 연장선에서 봐도 이례적이다.
논평은 북한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도 비교적 솔직히 밝히고 있다. "(6ㆍ15) 공동행사 등을 통해 혈연의 정이 이어지는 과정이라면 남조선 당국자들이 운운하는 개성공업지구 운영 정상화 문제를 비롯한 문제들도 자연히 풀리게 돼있다"고 했다.
그러나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29일 "우리를 핫바지로 보느냐" "엿 먹으라는 태도" 등 거친 표현을 써가며 북한의 제의를 거절하고 민간이 아닌 당국 간 실무회담 형식을 고집했다. 이런 대응방식에 대해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이 사실상 백기를 들었는데 우리는 아예 굴복하라는 식으로 나오고 있다. 북한이 이를 수용하겠느냐"고 말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도 "뒤늦게나마 북한이 강경입장에서 후퇴해 개성공단을 정상화를 이야기하는데 우리 정부는 여전히 단편적 문제인 '원ㆍ부자재, 완제품 반출 문제' 협의를 위한 당국 간 대화를 고수하고 있다"며 "과연 적실성 있고 유연한 협상 전략인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갈등의 원인은 북한이 제공한 게 분명하지만, 이를 풀어가는 방식에서 우리 정부의 대응에도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귀머거리들의 대화'로 불렸던 과거 냉전시대 남북 간 불통을 재연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 위원은 "근로자 일방 철수와 같은 조치의 재발 방지를 위한 회담을 추구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그 형식으로는 실무회담보다 한 차원 더 높은 남북 통일장관회담이 돼야 한다"고 했다.
또 교착상태 장기화에 따른 남남(南南)갈등 심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6ㆍ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개성공단 기업들, 야당 등은 정부가 지나치게 원칙주의로 일관한다며 비판한다. 민간, 정치권이 각을 세우며 갈등이 커지면 우리 정부의 운신의 폭도 그만큼 좁아진다. 양 교수는 "북한이 민간 접촉만 주장하는 것 같지만 그 속에는 당국 간에 협의할 수도 있다는 의도가 숨어있다"며 "우리 정부는 이를 간파하고 6ㆍ15 공동행사, 개성공단 기업인 방북 등에 자연스레 당국이 참여해 문제를 풀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범수 기자 answer@
오종탁 기자 t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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