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 전에는 남산 터널을 차로 지나갈 때 지금처럼 혼잡통행료를 내지 않았다. 대신 100원짜리 동전 하나를 깔때기처럼 생긴 투입구에 던져 넣었는데, 일종의 통행료였다.
신문기자들은 술과 관련된 무용담을 누구나 하나쯤 갖고 있기 마련인데, 물론 이 중 대부분은 주사(酒邪)요, 실수담이다. 다음은 필자가 실제 경험한 드라마틱한 실수담이다.
그날은 12월 중순, 부서 망년회 자리였다. 당시 필자가 모셨던 부장은 술만 먹으면 테이블에 올라가 춤을 추는 기벽(?)이 있었다. 키도 조그마한 분이 어찌나 귀엽게 몸을 흔드는지, 인기가 대단했다.
그날 부장의 기분은 특별히 좋아보였다. 계산이 끝나고 지갑을 꺼내더니 부원들에게 택시비로 만 원짜리 한 장씩을 나눠주었다. 그리고는 호기롭게 운전대를 잡으면서 나에게 1000원짜리를 주고 100원짜리 10개로 바꿔 오라고 했다.
부장의 집으로 가기 위해선 남산 터널을 지나야 하니, 100원짜리 동전으로 통행료를 내기 위한 준비였다. 부서 막내였던 나는 재빠르게 근처 가게에서 지폐를 동전 10개로 바꾸어 부장 차(구형 그랜저였다)의 콘솔박스 위에 놓아드렸다. 참고로 당시엔 음주운전이 지금보다 훨씬 광범위하게 용인되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부장을 배웅한 다음 날 아침. 10시쯤 부장이 부원들을 소집했다. 그리고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제 내가 계산한 것 맞지? 도통 기억이 없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차는 집 앞에 주차돼 있는데 나머진 기억을 못하겠어."
그러더니 부장은 "지갑이 없더라"며 집 나간 기억을 찾아 나서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술값은 부장이 계산했고, 부원들에게 택시비까지 줬으며, 100원짜리 10개를 바꾸어 드린 것"까지 세세히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부장은 "아, 그래서 동전이 있었던 것이군"하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부장은 마침내 모든 것이 이해가 된다는 표정으로 "그런데 말이지, 오늘 아침에 보니까 동전 10개가 그대로 있더란 말이지"하고 씩 웃었다. 아, 우리의 귀여운 부장님은 남산 터널을 지나면서 동전 대신 지갑을 던진 것이었다.
<여하(如河)>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