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넥센에 새 둥지를 튼 서동욱. 일부 팬들은 그를 가리켜 ‘서봇대’라 부른다. 꿈쩍 않는 전봇대의 앞 글자에 성인 ‘서’를 바꿔 붙였다. LG 시절 스탠딩이나 체크스윙 삼진을 많이 당해 붙여진 오명. 우스꽝스런 별명이 서동욱은 반가울 리 없다. 넥센에서 반드시 별명을 지우겠단 각오다.
다음은 서동욱과 일문일답
수비에서 타구 판단이 다소 늦단 지적을 받았다.
어디 첫 스텝뿐이겠나. 부족한 게 많다. 솔직히 지난해까지 제대로 한 게 하나도 없었다.
유틸리티다. 수비 위치가 하나로 굳어지면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
한 포지션만 맡으려면 KIA에서 자리를 잡았어야 했다. 그때 기회를 살리지 못해 아쉽다.
사실 기회를 잡기 어려웠다. 당시 KIA 내야는 홍세완, 이현곤, 김종국 등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2004년 세완이 형이 아파 유격수로 대신 출전한 적이 있다. 김성한 감독의 파격적인 기용이었는데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절실함이 부족했던 것 같다. 경기고를 졸업하고 막 프로에 입문했는데 기라성 같은 선배들 사이에서 아기가 된 느낌이었다. 뭘 몰라도 한참 몰랐다.
2011년부터 2루수로 자주 출전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유틸리티를 고집하는데.
선배들이 이따금 조언한다. 한 자리를 맡아야 야구를 오래 할 수 있다고. 내 생각은 다르다. 한 포지션을 지켜야겠단 강박관념이 없다. 그래야 마음도 편하고. 유틸리티로도 충분히 야구를 오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게 내게 주어진 길인 것 같다.
그 가능성을 처음 제시한 지도자가 누군가.
공교롭게도 염경엽 감독이다. LG 수비코치로 있을 때 두루두루 소화가 가능하단 장점을 발견해줬다.
포수도 소화가 가능한가.
물론이다. 믿기지 않겠지만 (허)도환이가 다치면 포수마스크를 쓸 각오가 돼 있다.
프로에 데뷔해 맡은 적이 있나.
프로에선 없지만 상무에서 경험이 있다. 경기를 뛰지 못해 투수들의 공을 받아주고 있었는데 (용)덕한이 형이 경기 도중 부상을 당해 그대로 투입됐다. 그런 다양한 여지가 내겐 기회라고 생각한다. 한 번이라도 그라운드를 더 밟을 수 있으니까. 돌이켜보면 유틸리티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은 산전수전에서 비롯된 듯하다. 어려움 속에서 자연스레 마음이 굳세졌다.
유틸리티는 아무나 소화할 수 없다. 운동신경이 좋아야 한다.
괜찮은 것 같다. 눈썰미가 좋다고 생각한다(웃음). 어떤 운동이든 자세만 올바르게 잡아도 절반을 해낸다고 하지 않나. 내가 그렇다. 엄청 잘하진 못해도 한 번 배운 건 잊어버리지 않는다. 어떤 종목이든 웬만한 동작은 한 번 보면 다 따라한다.
대표적인 예가 있다면.
지난겨울 스키장에서 운동신경이 좋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 스노보드를 처음 접했는데 친구가 타는 걸 한 번 보고 그대로 따라했다. 그 뒤엔 고난이도 코스를 무사히 소화했고. 친구들이 쉽지 않을 거라며 만류했는데 두 번 정도 넘어진 게 전부였다.
운동신경이 타고났나 보다.
상무에서 단거리 육상을 제외한 28개 종목 선수들끼리 체육대회를 한 적이 있다. 50m 달리기를 했는데 전체 1등을 차지했었다. 지금보다 체중이 20kg 정도 더 나갔는데 결승선을 가장 먼저 통과하고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100m 달리기 기록이 어떻게 되나.
11초대다. 컨디션이 좋으면 더 빨리 통과하기도 하고.
키가 188cm다. 농구도 잘할 것 같은데.
모교인 휘문중학교가 농구로 유명하지 않나. 방성윤 선배를 보며 한창 농구를 할 때가 있었다. 그 선배는 정말 대단했다. 매일 3점슛 라인도 아닌 하프라인에서 슛을 연습했다. 괴물이었다. 당시 농구부와 자주 어울렸는데 친분을 앞세워 값비싼 농구화를 많이 챙겼다(웃음).
운동신경이 좋단 걸 언제 처음 알았나.
학동초교 때다. 지금은 둔해졌지만 어렸을 때만 해도 무척 날렵했다. 야구를 하려고 부모님을 1년여 동안 졸랐다. 힘들게 시작한 만큼 이젠 효도를 해야 한다. 야구선수로 꼭 성공하고 싶다.
수비에선 유틸리티를 고수하나 타석에선 스위치히터를 버렸다. 왼 타석만 밟는다.
이견의 여지가 없다. 염경엽 감독은 누구보다 나에 대해 잘 아는 스승이다. 어쩌면 나보다 나를 더 많이 안다. 스위치를 아예 포기하라고 한 건 아니다. 당분간 자세를 잡는데 치중하라고 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내게 필요한 부분이다.
왼 타석에서 컨택 만큼 파워가 실리지 않았다. 오른 타석은 정반대였고.
왼 타석에서도 멀리 칠 수 있다(웃음). 오른 타석에서 공을 맞추는데 애를 먹은 건 오른 팔꿈치 부상 탓이 컸다. 오른 타석을 피해도 수비에서 공을 오른손으로 던지다보니 통증을 피할 수 없었다. 완치된 지금도 오른 타석에 서면 이따금씩 통증이 찾아온다.
적잖은 스탠딩이나 체크스윙 삼진 탓에 ‘서봇대’란 별명이 붙었다.
기술적인 문제는 아니었다. 팔꿈치 통증 탓에 타석에서 겁을 많이 냈던 것 같다. 공은 눈에 보이는데 배트를 돌리기만 하면 아팠다. 계속된 부진에 멘탈까지 자연스레 무너졌고. 불명예스런 별명이 생긴 진짜 배경이다.
사실 그런 별명이 생기기도 쉽지 않다.
상대팀에서 에이스를 냈다고 가정해 보자. 내 임무는 출루에서 끝나지 않는다. 동료들에게 상대투수의 공을 많이 보여줘야 한다. 별명에는 그런 점도 분명 고려돼야 한다. 물론 결론은 실력이다. 작은 이병규만 해도 좋은 선구안으로 투수와 승부를 오래 끌고 간다. 나 역시 선구안은 좋다고 생각한다. 밸런스를 유지하는 것이 향후 관건이라 생각한다.
스위치히터를 맡아 집중력이 분산됐단 지적도 있었다.
그렇지 않다. 경기에 자주 나설 수 있던 건 모두 변신을 감행한 덕이다. 2008년 김용달 타격코치의 권유로 스위치히터를 맡았는데 이전부터 주고 싶던 변화였다.
넥센에서 거의 매일 특타 훈련을 한다.
그 덕에 타격감이 크게 좋아졌다. 현 훈련 환경에 100% 만족한다.
지난 8일 친정인 LG를 상대로 맹타(3타수 2안타 2타점)를 휘두르던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원래 그 정도로 잘 치지 않는데(웃음). 친정 여부를 떠나 타격감이 살아나 기분이 좋았다.
아직 주전으로 자리를 잡은 건 아니다.
수비 문제는 아니다. 공만 잘 친다면 당장은 힘들어도 분명 한 자리를 꿰찰 수 있다고 본다.
본인에게 가장 어울리는 색깔도 그때쯤 드러나지 않을까.
그럴 것 같다. 내 야구를 하고 싶다. 그동안 시행착오를 겪으며 많이 위축됐는데 조금씩 방향이 잡혀가고 있다. 유틸리티를 맡고 있지만 여기서 멈출 생각은 추호도 없다. 주전도 꿰차고 싶고 스타로도 거듭나고 싶다. 조건은 모두 갖춰졌다. 넥센에서 차분한 자세로 성실히 야구에 임하겠다. 이제 남은 건 잘하는 것뿐이다.
당신에게도 빛나는 시절이 있었다. 고교 시절 박경수(LG), 나주환(SK), 지석훈(NC), 김주호(은퇴)와 함께 최고의 내야수로 꼽혔다.
그나마 주환이가 프로에서 연봉을 많이 받는 것 같다. 당시 최고 실력자는 석훈이였는데(웃음). 경수도 잘했고. 난 운이 좋았다. 2001년 청룡기고교대회에서 홈런상을 받아 겨우 무리에 합류할 수 있었다. 동기들 대부분이 현 상황에 많이 답답해한다. 아직 스타로 거듭난 친구가 없어서. 그나마 최근 석훈이가 NC에서 자리를 잡은 것 같아 다행이다.
본인이 가장 먼저 밥을 사야 할지도 모르는데.
꼭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밥값이 문제가 되겠나. 가장 먼저 지갑을 여는 주인공이 되도록 노력하겠다.
이종길 기자 leemean@
정재훈 사진기자 ro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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