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덴마크에선 비만세라는 세금이 이슈가 됐다. 비만세라고 해서 뚱뚱한 사람에게 물리는 세금이 아니라, 고지방 식품에 부과되는 일종의 소비세다. 덴마크의 경우 육류나 버터, 치즈 등 포화지방 함유량이 2.3% 이상 되는 식품에 대해 세금을 매겼는데, 지방 1㎏당 약 3000원(2.7달러)을 부과했다.
당연히 식료품 가격은 올라갔다. 덴마크 정부가 국민들의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이 세금을 신설한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국민 건강이라는 공공의 안녕을 위해서다. 즉 고지방 고칼로리 식품의 소비를 줄여, 국민 후생에 도움을 주기 위한 의도였다. 국민 건강이 좋아지면, 매년 재정에서 지출되는 의료보험 지원액도 줄일 수 있다는 포석도 깔려 있었다고 한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덴마크 국민들은 비만세라는 세금을 내는 대신 이웃나라의 슈퍼로 몰려가 식료품을 사기 시작했다. 정부의 선한(?) 의도대로 몸에 나쁜 고지방 음식을 덜 먹은 게 아니라 기름값을 들여서라도 차를 몰고 가서 식료품을 산 것이다.
이에 따른 영향은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덴마크의 유통산업은 물론 낙농업이 직접적인 타격을 받았다. 관련 산업의 매출은 줄고 고용도 감소했다. 결국 덴마크 정부는 1년여 만에 두 손을 들고 비만세를 폐지할 수밖에 없었다. 비만세와 비슷한 취지로 검토되기 시작한 설탕세도 없던 일로 됐다고 한다.
덴마크 비만세의 사례를 경제학적으로 접근하면 "세금에 대한 정부 정책의 유효성 연구, 인간 행동의 기제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을 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정책 결정자들에게 주는 시사점이다.
핵심은 이것이다. 정부의 좋은 의도가 꼭 좋은 결과로 나타날 수 있는가. 철학적 대답을 원한다면 얘기가 달라지지만, 경제학적 대답을 원한다면 정답은 "아니다"다.
예를 들어보자. 금융당국의 주도로 여신전문회사법이 개정되면서 카드수수료 체계가 바뀌었다. 중소가맹점들을 위한다는 좋은 취지에서 시작된 정책이다. 이 같은 체계 개편으로 누가 득을 보게 됐을까. 우선은 매출액 2억원 이하의 중소가맹점들은 이득이다. 수수료가 인하되니까. 그러나 대형가맹점들은 전반적으로 수수료가 올랐다. 여기까지는 사회정의 차원에서 납득할 수 있다.
하지만 늘 그렇듯 불똥은 엉뚱하게 튄다. 체계 개편의 자연스러운 결과로 카드사들은 고객에 대한 각종 서비스 혜택을 축소했다. 왜냐면 여전법상 카드사가 일방적으로 부담하는 비용은 금지되기 때문이다. 결국 무작위적인 대다수의 금융소비자들은 의도하지 않은 피해자가 됐다. 중소가맹업자들을 도와준답시고 한 정책이 정작 대다수 금융소비자들의 후생을 해친 것이다.
은행들의 수수료에 대한 금융당국의 규제도 비슷한 측면이 있다. 수수료를 인하해 은행들의 수익이 줄어들면 "그것 참 고소하다"는 대리만족은 느낄 수 있을지언정, 국가 경제 전체적으로 꼭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할 수는 없다. 은행 수수료 인하 등으로 은행의 수익성이 전체적으로 나빠지면 최종적으로 그 부담은 국민들이 지게 된다. 은행들의 시스템 리스크가 발생하면 세금으로 거둔 공적자금이 투입된다는 얘기다. 이를 결정한 공무원들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모든 경제정책은 현실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 어떠한 고상하고 이상적인 정책이나 아이디어도, 제 돈을 아끼려는 소비자들의 발걸음을 이길 수는 없다. 정책결정자들에겐 뜨거운 가슴만큼이나 차가운 머리가 필요한 이유다.
그런 점에서 현 정부가 지하경제 세원 발굴을 명분으로 추진하는 '금융정보 열람 확대'는 보다 신중해야 한다. 정교하고 세밀한 수단 없이, 고귀하고 정당한 이상만으로 이를 추진할 경우 '검은돈'을 오히려 꽁꽁 숨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의철 부국장 겸 금융부장 charl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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