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바꾸면 미래 먹거리가 보인다…심종성 대한토목학회 회장
-세계 18개국과 기술교류 MOU…"국내 건설사 기술 소개 통한 진출 지원"
-4대강 검증단 논란과 관련해선 "차기 회장이 개입할 수 있는 문제 아냐"
대담=소민호 건설부동산부장
현실을 도외시한 채 이론을 중시하는 전문가들이 모인 곳이 학회라는 선입견은 심종성(60) 회장을 만나는 순간부터 깨졌다. 서울 송파구 오금역 바로 근처 대한토목학회 건물의 고색창연한 색깔부터 인근에 들어선 최신식 초고층 건축물과 대비되며 '어른 학자'들의 쉼터 정도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허를 찔린 셈이다.
심 회장은 가장 먼저 해외건설 수주를 거론했다. 현실적인 문제를 화두로 꺼낸 것이다. "지난해 국내 건설사들의 해외수주 규모가 649억달러였다. 이건 전자나 자동차산업의 연간 수출액을 훨신 뛰어넘는 액수"라고 말하며 심 회장은 수치까지 정확하게 제시했다.
건설업이 해외에서 크게 활약하고 있는 것은 학문에서 비롯된 기술력이 뒷받침되고 있는 것이며 더욱 해외 점유율이 높아질 때 젊은 동량들이 토목공학을 공부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다고 부연했다.
토목공학의 이미지가 크게 실추돼 젊은이들의 토목공학 전공 기피사유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건설산업의 발전상을 제대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말도 했다.
학회가 앞장서 해외진출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하나의 큰 역할이라는게 심 회장의 소신이다. 외국 학회와 교류를 활성화하는 것은 그냥 학문적 성과를 공유하자는 차원만은 아니다.
해당 국가가 인정하는 학회와 교류를 통해 정부와 발주처, 학계 등을 고루 접촉하며 신뢰를 쌓을 수 있고, 이것이 기반이 돼 건설일감을 수주하는 토대가 된다는 것이다. "학회를 통한 해외수주 지원은 발주처에게 기술에 대한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강력한 지원활동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학회 차원에서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것이 다른 나라와의 협력관계 구축이다. 현재 미국, 일본, 캐나다, 중국 등 17개국과 협력관계를 맺고 있으며 또 13개국가와 협력체결을 추진 중이라고 했다. "올해 협력협정을 맺은 곳이 인도다. 우리 건설업체들이 진출하고 싶어하는 나라여서 9월 인도토목학회와 함께 학문적 교류를 하면서 국내 업체들의 기술을 소개할 계획이다."
학회는 현대건설과 대림산업ㆍ포스코건설ㆍ삼성물산 등 대형 시공사와 엔지니어링업체 등을 참여시켜 관련 기술을 선보이도록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심 회장은 일회성 행사만으로 끝내지 않고 성과를 내기 위해 해외건설협회 등과 긴밀한 유대관계를 가지고 있다고도 했다.
심 회장은 이어 "최근 선진국 건설사들의 행보를 보면 남미국가에 대한 진출을 활발히 추진하고 있다"며 "페루나 칠레 등 남미국가 협회들과의 제휴를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건설산업 전문지인 ENR에 따르면 2011년말 기준 세계 건설시장의 점유율은 아시아가 25%, 유럽이 22%이고 중동(18%), 아프리카(15%), 미국(8%), 남미(8%) 순이다. 아프리카와 남미 등 새롭게 부상하는 시장을 합칠 경우 아시아와 거의 맞먹는 수준이다.
심 회장은 "국내 주택 시장이 침체된 상황에서 건설업체들이 그나마 수익을 올리고 있는 것은 해외수주 때문"이라며 "협회의 해외네트워크를 활용해 건설업체들의 해외 진출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건설업체들의 눈부신 성장세 이면에 아쉬고 가슴아픈 일도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해외수주의 85%가 플랜트인데 시공에 집중된 게 사실"이라며 "설계나 기획, 운영, 사후 관리 등의 프로젝트 단위로 수주할 때에 비해 수익률이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심 회장은 업체간 과당경쟁으로 수익률이 악화되고 있는 건설업계의 현 실태도 꼬집었다. "해외 발주처가 한국 업체간 경쟁을 의도적으로 부추기면서 저가수주를 유도하고 있는 게 공공연한 사실"이라며 "수익률이 많아야 5% 정도인 상황에서 발주처가 클레임이라도 걸면 적자 공사가 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일본의 경우 정부가 나서 업체들을 조율해 저가수주가 아니라 오히려 업체간 담합이란 비판이 나올 정도"라며 "국익을 위한 것으로 생각하고 우리 업계도 스스로 조율을 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자그마한 체구의 심 회장은 잔잔한 미소에서 부드러움을 느끼게 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이 평생 경험해온 '토목공학'에 대한 강한 자긍심을 발산했다. 토목공학에 대한 이미지 문제를 언급하는 대목에선 목소리가 한층 높아졌다. 그는 "일본에선 공학하면 토목공학을 제일로 쳐주는데 우리나라에선 의과대학, 약학대학, 한의과대학을 고려한 뒤 그 다음이 공대"라며 "좋은 공학이 홍보부족으로 천대를 받고 있다"고 개탄했다.
그는 "과거 일본의 현실도 우리와 마찬가지였다"며 "업계와 NHN이 손을 잡고 토목공학의 첨단기술에 대한 연간 50회 짜리 다큐멘터리 시리즈를 방영하는 등 이미지 개선 노력을 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그는 "국민들이 토목공학이라고 하면 막연히 '삽질' '노가다' 등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는 데 토목공학은 사실 최첨단 학문"이라며 "협회 차원에서 일본과 같은 방송물 제작을 통한 이미지 개선 사업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불공정 하도급 타파 등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경제민주화와 관련해서 심 회장은 "건설산업은 하청과 재하청 등 하도급 관계가 제일 복잡한 게 사실"이라며 "업체들이 불공정한 관계에 종속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특화된 기술을 개발하고 보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발주처가 공사기간을 정해놓고 몰아붙이기식 시공을 하는 국내 건설제도에 대해서는 다시 돌아봐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심 회장은 "해외에서는 한국 건설업체들이 수년 걸리는 큰 공사에 준공일을 정해놓고 공사하는 것을 의아해 한다"며 "발주처가 공기단축을 당연시하며 무리하게 강행시키면 필연적으로 시공부실이 생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명박 전 정부 시절 MOU를 맺은 4대강 검증단에 토목학회가 포함돼 논란이 일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차기 회장이 검증 과정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도 "당사자인 학회가 직접 입장을 밝히기는 조심스러운 상황"이라며 "정부의 결정을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한편 대한토목학회는 6ㆍ25전쟁 기간이던 1951년 12월23일 부산에서 결성됐으며 2만4000여명이 넘는 회원을 가진 국내 최대 학회다. 정리= 김창익 기자 window@
김창익 기자 wind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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