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늙어버린 한국경제, 역동성 사라져 위기
부총리에 實權 줘야
과거식으로 목표정해 "갑시다"는 불가능
대기업·재벌 구분해 정책 펼쳐야
복지만 멀리가면 국가 재정 거덜난다
조세 복지 적절한 '中부담·中복지' 제안
[아시아경제=대담 최창환 대기자] "국내총생산(GDP)이 100달러에서 1000달러까지 높아지는 데 12년이 걸렸고…. 이런 소리 접어두고 당시 경제사회 상황 속에서 경제관료들이 어떤 결단과 정책결심을 했어야 했는지 스토리 중심으로 풀어보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17일 12시 서울 명동 은행연합회에서 '코리안 미러클' 발간보고회가 열렸다. 해방 직후인 1945년부터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 추진된 1960~1970년대 당시 경제정책을 입안하고 실행한 경제관료들의 육성으로 만들어진 책이다. 편집위원으로 현오석 부총리(당시 KDI원장)과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당시 조세연구원장)도 눈에 띈다. 조 수석은 김정렴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김용환 전 재무부장관을 직접 인터뷰했다.
진념 편찬위원장(74ㆍ사진)은 책출간을 주도했다. "경제개발 50년을 맞아 살아있는 분들의 기억을 육성으로 기록, 정리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라 생각했다"고 말하는 진념 편찬위원장을 지난 15일 서울 역삼동 삼정KPMG 사무실에서 만났다.
◆"잘했다는 측면만 부각시킬 생각 없어"=코리안 미러클은 당시의 경제상황 속에서 정책이 입안된 과정과 이후 발생한 정치사회적 논쟁에 대한 고민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진념 편찬위원장은 "정책을 잘했다는 측면만 부각하지 말고 당시 정책결정자들이 겪었던 갈등과 고민, 미흡한 점도 같이 풀어내 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번 발간은 우리나라의 지식공유사업(KSP)의 일환으로 기획됐다. 경제발전 노하우를 배우고자 하는 개발도상국에게 도움이 되는 참고서를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에서다. 진념 위원장은 "지난 2010년 한국개발연구원(KDI)이 한국경제발전 60주년을 기념해서 책을 발간했는데 전문가가 아니면 책을 이해하기 어렵겠다 싶더라"며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스토리텔링, 사건 중심으로 정리했다"고 설명했다.
코리안 미러클은 '육성으로 듣는 경제기적' 시리즈의 1권이다. 개발시대를 이끈 두 거목 장기영 부총리와 김학열 부총리의 열정과 헌신으로 이뤄진 불균형성장의 공과를 기록했다. 향후 발간 예정인 2권은 1980~1990년 중반에 추진된 정책에 초점을 두고 각 섹터별로 정리 중이다. 재정개혁, 금융개혁과 1권에 담지 못한 새마을운동 등이 다뤄진다. 3권은 민간기업들이 불모지에서 어떻게 창의적인 경영을 해왔는지에 초점을 둘 계획이다. 진념 위원장은 "2권은 인터뷰가 거의 끝나 이르면 올해 하반기에 출간될 것"이라며 "3권은 올해 준비해서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경제분야, 부총리에 책임과 권한 일임해야"=박근혜정부 들어 5년 만에 경제부총리가 부활했지만 앞두고 있는 경제상황이 녹록지 않다. 진념 위원장은 지난 2001~2002년에 경제부총리를 지냈다. "경제상황이 어렵다"며 말을 시작한 진념 위원장은 "지금 우리 경제는 조로증에 걸리고 경제적 역동성이 사라졌다"고 진단했다. 중국이 빠르게 추격하고 있고 일본의 반격이 시작되고 있는 것도 위기다.
진념 위원장은 이럴 때일수록 경제관료의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경제분야 만큼은 경제부총리에게 책임과 권한을 일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이 부총리를 경제 총사령탑으로 인정하고 권한을 줘야지만 부총리가 제 역할을 다 해낼 수 있다는 의미다.
그는 "총리는 사회, 문화 전반을 다루고 경제분야는 경제부총리에게 맡기는 것이 맞다"며 "책임과 권한을 분명히 해줘야 움직이지 책임을 나누게 되면 결국 아무도 책임을 떠안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면 경제부총리를 만든 의미가 없지 않느냐"고 힘 줘 말했다.
다만 경제부총리의 역할은 과거의 그 것과는 다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과거 부총리는 시장을 만들어 가는 한편 한정된 예산과 자금을 배분하면서 경제발전을 진두지휘했다. 진념 위원장은 "이제는 과거식으로 목표를 정해 '갑시다' 하는 건 불가능하다"며 "각 부문의 얘기를 다 들으면서 조정해주고 민간 부문에서 자기들의 재능을 활용해 최선을 다해 뛸 수 있는 환경과 시스템을 만들어주는 것으로 역할이 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기업과 재벌을 구분하는 정책을 펼쳐 성실히 일하는 대기업과 중견기업은 마음대로 뛰놀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그들의 역동성을 죽이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대신 대기업은 나라의 대표선수라는 생각을 갖고 재벌적 행태를 스스로 과감히 단절하는 '커밍아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박근혜대통령, 아버지 용인술(用人術) 배워야"= 박정희정부 초기에 사무관으로 공직을 시작한 진념 위원장은 박정희 대통령이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한 능력을 높게 샀다. 인사 잡음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과는 차이가 있다. 진념 위원장은 "박정희 대통령은 그때그때 부서가 어떠한 중요성을 갖고 있느냐를 놓고 그 일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을 관리하고 썼다"면서 "용인술이 탁월했다"고 말했다.
또 진 위원장은 박정희 대통령의 새마을 정신인 근면ㆍ자조ㆍ협동을 현대식으로 재해석해서 지켜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복지정책도 자조를 전제로 이뤄져야지 나눠주기식은 안된다"며 "자조와 연결된 사회운영 복지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국민행복기금을 예로 들며 "국민행복기금이 빚 탕감 기능만 갖고 수입원을 마련해주지 않으면 빚에 의존하는 사람만 늘어나게 된다"며 "일할 능력이 있는 사람은 일자리를 연결시켜주는 등 자조를 키워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복지정책에 캡(cap)을 씌울 필요가 있다는 말도 더했다. 그는 "세출예산을 절감하고 지하경제를 관리하고 조세특례를 없애도 복지재원이 모자랄 경우 복지프로그램을 재원에 맞춰 연동을 해야한다"며 "복지만 멀리 가버리고 세수에 구멍이 나면 국가재정만 거덜나게 된다"고 말했다. 복지는 한번 벌려놓으면 계속 가야하기 때문에 속도조절을 하면서 맞춰갈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조세부담도 적정한 수준으로 높이며 복지수준도 함께 제한하는 '중부담 중복지'를 제안했다.
진념 위원장은 우리나라를 재창조하는 '뉴인벤트 코리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주요 2개국(G2)시대와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의 질서 개편이 앞으로 빠른 속도로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적으로는 중산층이 줄어들고 사회적 형평에 대한 불만이 더 커지는 상황에 놓였다"고 우려했다.
진 위원장은 "이런 상황에서 규율과 책임이 있는 시장경제를 분명히 세워야 한다"며 "대기업이 더 커나가도록 하되 중소기업이 세계를 제대로 뚫고 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발랄하고 모범적인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재능을 최대한 발현해나갈 수 있는 방향으로 성장엔진을 바로 세우고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사회적 자본를 업그레이드하는 노력 등이 같이 이뤄져야 새로운 한국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혜민 기자 hmee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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