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드나무'의 발칙한 경매⑥]소액투자로 두 배 수익내기
[아시아경제 이민찬 기자]부동산시장이 정말 호황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 당시엔 낙찰가격이 하늘 높을 줄 모르고 고공 행진을 했다. 낙찰가격이 급매물 수준과 비슷해 경매를 통해 낙찰받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필자 역시 낙찰가격과 7개월째 '부적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경매는 짝사랑으로 끝나는 듯 보였다. 이런 분위기에 낙찰받을 수 있는 방법은 아침 일찍 경매 법정에 '폐문 부재'라고 써 붙이고 혼자 입찰하는 수밖에는 없을 것 같았다. 모두들 저렇게 높게 낙찰받아서 수익을 낼 수 있을는지 의문스러웠다.
그러나 고수익을 얻기 위해선 남들과 다른 생각, 발칙한 발상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평소 생각이다.
몇 년 전 선친을 공원묘지에 모셨다. 살아생전에 매장 묘를 원하셨던 선친을 준비없이 보내게 돼 급히 공원묘지로 모시게 됐다. 분묘에도 분양평수가 있고 전용면적이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분양면적 20㎡(약 6평), 전용면적 10㎡(약 3평)짜리 1기 분묘 사용료가 1200만원이었다. 나는 기가 막혀서 "아파트도 아닌데 공용면적과 전용면적을 분리합니까?"라고 관리소장한테 물었다.
이에 대해 관리소장은 "공용 부분으로 도로와 식당이 빠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임야가 3.3㎡당 400만원이었다. 그것도 15년 지나면 개장하고 다른 손님을 또 모신다고 한다. 묘지사업이 이윤을 많이 가져다주는 사업이라는 것을 그때 알았다.
분묘시세가 살아있는 주거지역시세였다. 극빈자 분묘라서 1200만원이지 좌우석물 좀 해 놓은 펜트하우스급 분묘라면 값이 3배 이상 뛴다. 공원묘지 소유주는 빌딩가진 사람 안 부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부터 경매에서 열심히 묘지를 찾기 시작했다. 경매물건이라는 게 주문자 생산방식이 아니여서 '묘지'라고 꼬리표 붙어 나오는 경우가 거의 없다. 분묘 토지를 찾았다 해도 전 주인이나 친인척들이 누워계시다 보니 토지주가 바뀌었다고 일어나시라고 할 수 도 없는 노릇이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묘지사촌뻘 정도 되는 답 100㎡가 공매로 나왔다. 이 땅은 휴경농지로써 전혀 쓸모없는 땅 덩어리였다. 공동묘지 한가운데 박혀있는 땅이다 보니 농작물을 생산한다고 해도 공원묘지 내에서 경작된 농작물이라 판매는 어려울 것 같았다. 또 이 토지위에 건축행위를 한다는 건 더더욱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아무짝에도 쓸 수 없는 땅이었지만 내 계산은 달랐다.
이 땅을 확보해서 10㎡씩 필지를 분할해 10개 분묘로 조성한다면 한 분묘 당 1000만원만 잡아도 매매가격이 1억이 됐다. 그런데 공원묘지 가운데 박혀있는 땅을 공원 측에서 왜 매집하지 않았을까? 그 이유가 궁금했다.
공원묘지 소장을 찾아가 이유를 물었다. 소장 이야기로는 공매처리 될 땅 주인이 공원묘원 측에 찾아와 매입해 달라고 여러 차례 요청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땅의 지목은 '답'이었고 공원묘지측은 영농을 목적으로 하는 법인이 아니기 때문에 답을 취득 할 수 없는 법령에 막혀서 취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일단 가장 강력한 라이벌 하나는 없어진 셈이었다. 그러나 또 하나의 문제가 생겼다. 온 산이 다 법인의 땅인데 서로 불편한 관계가 돼서 이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주위에 가림막이라도 친다면 모든 것이 공염불이 되지 않을까하는 걱정이었다.
그래서 땅 주변 등기부등본을 전부 살펴봤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다행이도 도로로부터 이 땅까지 연결된 땅은 건설교통부의 땅이었다. 사유재산으로 둘러 쌓여있으면 나중에라도 주위통행권에 대한 시비가 걸릴 확률이 높지만 도로까지 연결된 땅은 건설 교통부가 40년째 빈터로 남겨 놓고 있었다. 도로에서 묘지까지 들어가는데 는 문제될 일이 없었다.
투자 목적으로는 생각하지 못할 묘지 땅이었기 때문에 단독 응찰, 약 1500만원에 낙찰 받았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현장에 가보니 손바닥만 한 땅덩어리가 반쪽은 물이 아주 잘 빠지는 마사토로, 다른 쪽은 물이 솟구치는지 '답' 상태로 조성돼 있었다. 묘지용도로 사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습지는 매도 불가 지목이기 때문에 어떻게 하든 묘지로 사용할 수 있도록 리모델링을 해야 했다.
어디 가서 물어봐야 솟구치는 물길을 잡을 수 있을는지 난감했다. 관리실에 찾아가 대안을 물었더니 땅에 유공관을 넣으면 산에서 내려오는 물길을 돌릴 수 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어리석은 일이었다.
포크레인으로 길게 땅을 파기 시작했고 네모난 땅 모서리로 구멍을 뚫어 놓은 유공관을 넣었다. 작업을 하면서도 참 미덥지 않은 공사였다. 하지만 전문가 조언을 무시할 수 없어서 공사를 강행했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며칠 후 묘지를 가봤더니 그 전보다 더 많은 물이 솟구치고 있었다.
묘안을 찾지 못하고 나와 집으로 돌아오는데 새빨간 흙을 실은 차량이 질주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됐다.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바로 저거다. 차량으로 흙을 내다 버리는 회사에 연락했고 트럭 여러 대 분량의 흙을 공급 받을 수 있었다. 당시 판교 신도시 공사가 한창이었기 때문에 처치 곤란한 토사 들이 많이 나왔다.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지대는 좀 높아졌지만 습지에 대한 걱정은 없어졌다. 묘지광고가 나가고 많은 사람이 땅을 보기 위해 현장을 찾았다. 매수자에 입맛에 맞게 만들어 놓은 이 묘지는 매수 3개월 만에 매우 놓은 금액으로 매도할 수 있었다.
아무 쓸모없는 땅으로 버려져 있을 부동산이라도 발칙한 상상력을 동원해 용도를 변경한다면 수익을 낼 수 있는 좋은 상품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것이다.
'버드나무' 강윤식(사진)은?
서울에서 태어난 필자는 경매를 업으로 삼은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태어나 바로 경매와 인연을 맺은 셈이다. 1990년대 사업에 실패한 후 본격적으로 경매에 뛰어들었다. 재고의 부담도 없고 번듯한 사무실을 갖춰야할 필요도 없었다. 시간도 자유로웠다. 창의적이고 역동적인 경매의 매력에 푹 빠져 살다 보니 '365일 월세 받는 남자의 고수익 나는 경매'라는 책도 출간하게 됐다. 다수의 방송에서 경매 관련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지금은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프리버드"(http://cafe.daum.net/liberalbird)라는 카페를 바탕으로 후배를 양성하고 있다.
이민찬 기자 lee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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