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고형광 기자] 지하경제 양성화에 칼을 빼 들은 국세청은 지난해 '지능형(?) 탈세'를 저지른 대(大)자산가 1400여명을 적발해 2조3230억원을 추징했다. 편법 상속·증여 자산가 770명, 국부 유출을 초래한 역외 탈세자 200명, 불법 사채업자 등 대부업자 360명, 인터넷 쇼핑몰·도박 등 전자상거래를 이용한 탈세자 100명 등이다.
국세청은 4일 "오늘부터 탈세 혐의가 큰 대재산가, 고소득자영업자, 역외탈세자 등 224명에 대한 세무조사를 착수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날 조사에 투입된 국세청 직원은 930명에 이른다. 국세청 전체 조사 인력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엄청난 규모다.
국세청이 대대적인 조사에 착수하면서 향후 세무조사의 방향과 방식에 관심이 쏠린다. 국세청 임환수 조사국장(사진)은 "앞으로 대기업이나 부유층에 대해서는 불공정 거래와 세금 없는 부의 대물림에 대해 엄정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성실납세자와 중소기업, 서민들은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적극 지원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국세청이 이날 밝힌 지하경제의 탈세 사례는 변칙 상속·증여, 일감 몰아주기, 역외탈세 등 다양했다.
◆변칙 상속·증여 = 부품 제조업을 경영하는 A씨는 배당금으로 불어난 재산을 자녀에게 무상 증여하려고 꼼수를 부렸다. 자녀 명의의 장기저축성 보험에 210억원을 일시납입하고 부동산 취득자금 180억원을 현금으로 증여했다. 무려 400여억원이 자녀에게 돌아갔지만 증여세는 한 푼도 내지 않았다. 또 A씨는 모기업이 취득한 고액의 기계장치를 계열사인 자녀 소유의 법인에 장기간 무상 대여하는 방법으로 이익을 넘겨줬다. 그러면서도 기계장치에 대해선 투자세액공제를 받는 얌체짓을 했다. 국세청은 A씨의 자녀에게 증여세 191억원, 법인세 351억원 등 613억원을 추징했다.
◆일감 몰아주기 = B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회사가 직접 수출하던 물품을 자녀 명의의 가짜회사 세 곳을 거쳐 우회 수출하도록 해 자녀 명의의 회사에 일감을 몰아줬다. 수출 대행수수료는 평균 수수료의 7배를 지급했다. 또 B씨는 자녀들에게 신주인수권부사채(신주를 인수할 권리가 있는 채권)를 저가에 넘긴 후 고가의 주식으로 바꾸도록 했다. 국세청은 B씨가 '일감 몰아주기' 등의 방식으로 법인세와 증여세를 탈루했다고 판단하고 317억원을 추징했다.
◆편법 사업승계 = 제조업체와 도소매업체를 보유한 C씨는 경영권을 2, 3세에게 편법으로 승계하다 작발됐다. 그는 주력사업을 분할해 사주 2세가 설립한 계열사 한 곳과 미성년자인 손주가 대주주인 법인의 계열사 두 곳으로 분산해 넘겼다. 이로 인해 모기업은 수입액이 수백억원대에서 수십억원대로 급감했지만, 자녀 소유 법인의 주식가치는 단기간에 몇십 배가 뛰었다. 이 같은 사업권 저가양도 등에 의한 이익증여, 계열기업 간 부당한 이익분배 등은 증여세 및 법인세 과세 대상이다. 국세청은 사주 2, 3세에 증여세를 물리고 관계사에 법인세를 부과하는 등 모두 126억원을 추징했다.
◆역외 탈세 = 조세피난처를 이용한 역외탈세도 있었다. 해운업체의 사주 D씨는 국내에서 번 소득을 자녀에게 주려고 조세피난처에 자녀와 직원 명의의 위장 계열사 두 개를 만들었다. 실제 용역은 해운업체가 제공하지만 위장계열사가 해외 거래처와 선박 용선·대선 및 화물 운송 계약을 맺고 대가를 위장 계열사가 챙기는 수법으로 세금 부담없이 재산을 넘겨줬다. 국세청은 이들 업체에 법인세 등 433억원을 추징했다.
고형광 기자 kohk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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