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이성열에게 넥센은 기회의 땅이다. 두 가지 이점이 있다. 이전 소속팀 LG, 두산의 홈은 모두 잠실구장이다. 운동장은 넓다. 힘 좋기로 소문난 이성열이 혀를 내두를 정도. 그는 두산 시절 “대전구장은 심플하게 쳐도 (타구가) 넘어가는데 잠실구장은 그게 안 된다”라고 했었다. 넥센의 홈인 목동구장의 크기는 상대적으로 좁다. 이성열의 진가가 발휘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안정된 출장 기회도 빼놓을 수 없다. 이성열은 두산에서 뛴 2010년 24홈런을 쳤다. 그해 리그 삼진 2위(136개)의 불명예를 얻었지만 김경문 감독의 전폭적인 지지에 주전 자리를 보장받았다. 흐름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듬해 김경문 감독이 지휘봉을 내려놓으면서 입지가 줄어들었다. 외야 자원이 풍족한 두산은 유망주들을 기용했다. 초조해진 이성열은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없었다. 그는 커리어 하이를 찍은 2010년에도 “같은 포지션의 선수가 잘해서 팀이 이기면 즐거우면서도 내 자리가 불안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성열은 지난 18년의 야구인생에서 2010년을 가장 뿌듯하게 여긴다. “프로에서 피땀 흘린 지난 7년을 보상받은 것 같다”라고 했을 정도다. 그해 성적은 타율 2할6푼3리 24홈런(6위) 86타점(7위). 그런데 자랑스럽게 생각한 기록은 따로 있었다. 110개의 안타다. 이성열은 “세 자릿수 안타를 때릴 줄 몰랐다. 홈런도 좋지만 안타 하나하나가 소중했다. 프로에서 뛸 수 있는 힘이 됐다”라고 했다. 보장된 주전 자리 외에 타격감이 오른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그해 이성열은 스스로 생각하고 연구해 맞는 옷을 찾아나갔다. 코치들에겐 조언만 얻었다.
“스프링캠프 훈련 때 추신수 선배의 타격 폼을 TV로 접했는데 몇 가지 도움이 될 요소가 보이더라. 다리, 팔이 나오는 코스와 타이밍 등이다. 혼자 해보려는데 잘 되지 않아 송재박, 신경식 코치에게 조언을 구했다. 몇 차례 상담 끝에 오른 발 앞에 나무판을 놓고 타격을 했다. 새 방법은 몸에 잘 맞았다. 야간 운동 땐 나무판 대신 벽돌을 이용했는데 그 때부터 공이 높게 띄워졌다. 스윙도 자연스러워졌고.”
사실 이성열은 더 빨리 성장할 수 있었다. 아마추어 시절 거포에 컨택 능력도 나쁘지 않았다. 기본 타격 틀이 갖춰져 있지 않던 그를 많은 타격코치들은 돕고 싶어 했다. 결과적으로 이성열에겐 혼란이 됐다. 그는 프로 데뷔나 다름없는 2005년 9홈런을 때렸다. 하지만 이후 4년 동안 매 시즌 홈런은 2개 이하였다.
“솔직히 너무 많은 코치들로부터 도움을 받다 보니 머릿속이 복잡했다. 나중엔 받아들이기가 힘들더라. 혼자 우물 속에 빠져 헤매는 듯했다. 그 점이 너무 아쉽다. 물론 내 잘못이 더 크다. 어린 나이에 고지식해서 조언을 흡수하려 하지 않았다. 내 것이 최고란 생각에 사로잡혀 장단점을 파악하지 못했던 것 같다.”
염경엽 감독은 이런 이성열을 잘 알고 있었다. 내놓은 해결책은 탁월했다. 별다른 재촉 없이 주전 자리부터 보장해줬다. 그 사이 쌓인 신뢰는 이성열을 다시 일어서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의욕이 되살아났다. 지난 가을 마무리훈련에서 포수마스크를 자청할 정도였다. 스프링캠프에서 타격에만 집중할 것을 요구한 염경엽 감독은 이내 개선방안을 제시했다. 스윙 폭을 줄이게 하는 한편 밀어치는 연습을 시켰다. 정확성을 높여도 파워에 큰 손색이 없을 것이란 계산이었다.
해결책은 적중했다. 이성열은 지난 30일 광주구장에서 열린 KIA와 개막전에서 홈런 포함 3안타를 몰아쳤다. 31일 경기에선 2루타를 치며 타점을 올렸다. 배트는 홈에서도 빛났다. 2일 목동 LG전에서 2회 벤자민 주키치를 상대로 결승 쓰리런을 때렸다. 밀어 쳐 만들어낸 한 방으로 넥센은 3-1로 승리하려 2연승을 달렸다. 경기 뒤 이성열은 염경엽 감독에게 가장 먼저 감사를 표시했다.
“(홈런을 칠 수 있던) 가장 큰 원동력은 염경엽 감독이다. 부진한 선수를 기용한다는 건 힘든 결정이다. 매 경기를 꾸준히 나설 수 있다는 게 심리적으로 안정을 준 것 같다. 믿고 기회를 주셔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너무 감사하다.”
2010년의 타격감을 찾았다는 이성열. 성적은 당시를 충분히 뛰어넘을 수 있다. 비상(飛上)은 이제 막 시작됐다.
이종길 기자 leem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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