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출범한 지난 20일은 춘분으로 봄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새 정부의 경기부양에 대한 의지와 글로벌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으로 산업현장 곳곳에도 봄기운이 감지되고 있다. 매서운 겨울을 보낸 건축업계에도 따스한 봄 햇살이 조금씩 비치는 느낌이다.
새롭게 출범한 정부는 '문화가 있는 삶'을 국정 목표 중 하나로 삼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21세기는 문화가 곧 국력인 시대'라면서 문화강국 건설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문화'는 전 세계로 수출하는 '상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K팝과 드라마에서 불기 시작한 전세계 한류 열풍으로 이미 실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전 세계를 열광시킨 싸이의 '강남스타일'로 YG엔터테인먼트의 시가총액이 한때 1조원을 돌파하기도 했고 대한민국 문화오락서비스 국제수지는 흑자를 기록했다. 뿐만 아니라 다른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등의 문화적 파급효과까지 고려하면 그 경제적 가치는 1조원 이상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번 정부의 '문화 융성' 정책 기조는 건축계에 종사하는 한 사람으로서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좀 더 바라는 점이 있다면 덴마크나 핀란드처럼 건축이 한국의 문화 경쟁력이 될 수 있다는 인식 전환이다. 건축은 단순히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파급력과 가치를 지닌다. 이름 없는 스페인 북부의 공업도시를 연간 1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는 도시로 만든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이나 연 4400여억원의 입장수입과 3000명 이상의 고용창출 효과를 내는 '호주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만 봐도 그렇다.
영국의 창조산업도 대표적인 예다. 영국은 1998년 문화ㆍ커뮤니케이션창조산업부를 설립, 지난 15년간 창조성과 기술을 활용해 부와 고용을 창출하는 잠재력을 지닌 '창조산업' 육성에 힘을 쏟았다. 현재 150만명의 창조산업 종사자가 1분당 7만파운드(약 1억1400만원)를 벌어들이며 연간 360억파운드(약 58조7900억원) 이상의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다른 산업에 미치는 경제적 파급효과도 높다.
창조산업은 디자인, 미술품, 음악, 광고, 영화, 출판, 컴퓨터게임 등 다양한 산업을 아우른다. 건축도 여기 속한다. 최근 영국무역투자청의 지원을 받아 협력관계 모색을 위해 한국을 찾은 영국 창조산업사절단에는 서울 IFC몰 설계와 인테리어를 맡은 베노이(Benoy)사가 포함돼 있었다. 여기에는 건축이 미래성장동력이자 대표적인 문화 수출 상품이 될 수 있다는 영국 정부의 인식이 깔려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 건축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 신도시가 베트남, 미얀마 등 신흥개발국의 롤모델이 되고 8년 연속 세계 최고의 공항으로 손꼽히는 인천국제공항의 설계 노하우를 필리핀 등 여러 나라가 수입해 가는 것이, 바로 건축이 한류 열풍을 이어갈 수 있는 대표 수출상품이 될 수 있다는 방증이다.
또한 건축은 건설사업의 머리에 해당하는 만큼 건설과정에 따른 관련 산업의 수출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 해외시장에서 건축 프로젝트나 신도시 마스터플랜을 따내면 건축업계의 외형성장은 물론이요, 한국의 건축문화와 기술, 연관산업 수출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 건축이 해외에 진출하려면 건축이 만들어내는 무형의 가치에 대한 인식전환이 절실하다. 시공 위주의 우리 산업구조에서는 건축가를 단순 기술자로만 보거나 건축물의 가치를 공사비 규모로만 판단하는 시선이 존재한다. 건축이 가지는 문화 경쟁력과 경제적 가치를 인지하고 전 세계에 '한국스타일의 건축'을 곳곳에 심을 수 있는 지원정책을 펼쳐 주기를 기대해 본다.
정영균 ㈜희림종합건축사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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