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초희 기자]경제민주화.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공약이다.
하지만 그 개념을 놓고는 말들이 무성하다. '경제 활동이 민주적으로 이뤄지도록 개혁하는 일'을 뜻하지만 이를 둘러싼 해석은 제각각이다. 여야가 다르고 여권 내부에서도 시각차가 뚜렷했다. 지방자치단체마다도 다르다.
서울시가 정의하는 경제민주화는 '정치가 경제에 적극적으로 간섭하는 것'인가 보다. 지난 해부터 논란을 빚었던 대형마트의 특정품목 제한조치를 박원순 서울시장이 강행하기로 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득(得)보다 실(失)이 많다는 지적과 '정부의 유통구조 혁신을 통한 물가안정책'에 정면 배치됨에도 불구, 서울시는 자신들이 정의하는 '경제민주화'에 맞춰 대형마트의 품목 하나하나까지 간섭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경제민주화를 테두리에 둔 재래시장과 골목상권의 영세상인 보호가 명분이다.
서울시가 제한한 품목들은 총 51개. 채소, 두부, 계란, 생선, 술, 담배 등이다. 51개 품목을 마트에서 못 팔게 하면 골목상권이 살고 영세상인이 보호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대형마트에 납품하는 것으로 먹고사는 영세상인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특정 품목 판매를 제한하면 그간 마트에 납품하던 농ㆍ수ㆍ축산업 기반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 51개 금지품목의 매출 비중은 이마트의 경우 지난해 15.1%로 추산됐다. 금액으로 2조2000억원 규모다. 중소기업과 농어민들이 판로가 막혀 입게 될 손실은 가늠조차 힘들다.
정부와 서울시의 엇박자도 문제다. 지난 7일 지식경제부는 주요 유통업체 부사장급 임원들을 불러 물가안정 대책회의를 열었다. '가격을 더 낮추라'는 압박용 회의였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직후 대형마트들은 '코드'에 맞추기 위해 '과하다 싶을 정도'의 할인행사를 해왔다. 10년전 가격에 맞추는 행사도 빈번히 했다. 이런 가운데 서울시가 물가에 바로미터가 되는 품목들을 팔지 말라고 한 것이다.
한쪽에서는 물가 잡겠다고 마트를 후려치고 다른 한쪽에서는 영세상인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마트를 때려잡고 있는 형국이다.
영세상인과 골목상권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이 대형마트에서 판매하는 물건을 제한하는 것밖에는 없을까.
자영업 문제 해결은 가계부채 문제 해결이나 내수 활성화와 직결된다. 경제 대책으로 태클을 걸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유독 우리나라만 자영업자 비중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시급하다. 결국 자영업의 경쟁력을 키워주는 건 정부가 고민해야 할 중요한 과제다. 지자체와 정부의 공조정책이 중요한 이유다.
그러나 '경제민주화'에 대한 서울시의 정의가 달라서일까. 잘못된 규제를 탓하는 지적에도 서울시는 막무가내다. 근본적인 대책과 소비자 편익을 무시한 채 자영업을 어디로 끌고 갈지에 대한 비전이 없다.
원인에 대한 깊은 분석 없이 내놓은 어설픈 대책은 또 다른 수많은 서민과 영세업자들에게 피해를 입힐 뿐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시장 선거 출마 당시 대형마트의 품목제한이 '상생이라고 하는 시대의 큰 흐름에 맞는 정책'이라고 공언했다. 명분에만 휩쓸려 깊은 고민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박원순 시장의 상생(相生)이 상생(傷牲)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이초희 기자 cho77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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