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까지 차오른 부도 불안불안한 31조 용산개발사업
[아시아경제 김창익 기자]파국을 맞은 용산개발사업은 결과적으로 보면 이미 오래 전부터 예견돼 왔다. 부동산 경기침체로 자금난에 처한 상황에서 시행사인 드림허브는 대주주간 갈등으로 사분오열돼 있었다. 서로 신뢰하지 못한 상태에서 상대방의 양보만 바라는 태도가 만연, 추진력을 잃었다. 정부의 불개입 의지 천명은 물론 주주사인 서울시가 시장 교체 이후 서부이촌동 아파트 주민을 대상으로 투표를 강행하는 등 사업추진 구도가 더욱 복잡하게 꼬인 것도 개발주체의 부도를 부른 요인으로 지목된다.
부도가 현실화되면서 서부이촌동 아파트 값이 폭락하는 등 시장에선 부도로 인한 충격이 가시화되고 있다. 정부가 출범 초기 부동산 시장 정상화에 방점을 찍고 있는 가운데 용산발 악재의 파장이 더욱 투자심리를 위축시킬 전망이다. 부동산 정상화 대책이 언제 어느 정도의 규모로 발표될 것인지부터 대책이 경색된 시장을 얼마나 안정시킬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호황기 개발의 상징, 불황기 추락= 용산개발은 부동산시장 호황기인 2000년대 초 계획됐다. 코레일이 경부고속철도 건설과정에서 불어난 부채 4조5000억원을 갚기 위해 철도기지창 부지 매각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개발 청사진을 그렸다. 2006년 전 오세훈 시장 당시 한강 르네상스 계획과 함께 서부이촌동 5개 아파트 단지를 통합시키는 쪽으로 개발규모가 불어났다.
사업지 규모가 51만5483㎡의 땅에 111층 랜드마크 빌딩을 비롯, 총 23개 초고층 빌딩을 건설하는 것으로 계획돼 '단군이래 최대 규모의 개발사업'이란 별칭이 붙기도 했다. 이곳에 계획된 상업시설은 코엑스몰의 7배에 이르고 사무실 연면적은 강남 파이낸스타워의 9배에 달할 정도였다.
이로인해 2007년 사업자 선정 당시만 해도 삼성과 LG 그룹 등 두 그룹이 랜드마크 빌딩 주인으로 올라서기 위해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사업자 선정과정에선 삼성물산-국민연금 컨소시엄과 프라임-현대건설 컨소시엄이 최종 경합을 벌일 정도로 용산개발 사업은 그야말로 장밋빛 청사진이었다. 이후 삼성물산 컨소시엄은 땅값을 8조원에 낙찰받아 사업규모는 31조원으로 불었다.
하지만 이같은 개발 계획은 드림허브가 부도를 맞으면서 결국 물거품이 됐다.
◆대주주 갈등으로 자금난 파고 결국 못넘어= 부도의 직접적인 원인은 자금난이다. 드림허브 자본금 1조원이 바닥을 드러낸 상황에서 코레일과 롯데관광을 비롯한 30개 출자사들은 추가 부담에 대한 공 떠넘기기에 급급했다. 이런 가운데 2012년 정창영 코레일 사장이 취임하면서 대주주 갈등 문제는 수면 위로 부상했다.
정 사장은 코레일 소속 드림허브 이사 3명을 모두 교체하면서 단계적 준공 방식으로의 사업계획 변경을 강력하게 밀어붙였다. 이 과정에서 2대주주인 롯데관광과 사업 주도권을 둘러싼 마찰이 고조되면서 사업이 파열음이 심화되기 시작했다.
출자사들은 2500억원 규모의 전환사채(CB) 발행과 증자, 외부투자자 유치 등을 통해 돌파구를 찾으려 했지만 대주주 갈등과 다른 출자사들의 책임 떠넘기기로 결국 자금난을 해결하지 못했다.
지난 12일 대한토지신탁과의 64억원 자금지급 협상이 결렬된 것도 결국 손해배상 승소금 257억원 중 나머지 193억원에 대한 추가 지급보증 문제가 원인인 것으로 전해졌다. 코레일은 지분율 이상의 부담을 거부했고, 나머지 출자사들은 지분율 만큼의 책임조차 외면했다.
◆정부와 서울시 "나몰라라".. 책임론 부상= 사업 주체 중 하나인 서울시도 부도에 대한 책임 공방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는 서부이촌동 통합개발을 주도한 주체다. 또 땅값 상승과 통합개발에 대한 서부이촌동 주민반발로 사업 지연을 자초한 당사자이기도 하다.
아울러 박원순 시장이 취임하면서 주민투표를 통해 사실상 통합개발을 대신할 출구전략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보상 시점이 상당기간 늦춰지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실제 2011년 11월 드림허브가 제출한 개발계획변경 승인 요청안이 2012년 7월에서야 서울시에 접수됐다. 그 이후에도 여전히 승인이 나지 않는 등 인ㆍ허가 일정만 해도 1년 이상 지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서울시가 주민투표 일정을 감정가 등 보상조건이 결정된 이후로 미루는 안을 추진하면서 보상 작업이 또 다시 지연되는 악재가 반복돼 왔다. 한 출자사 관계자는 "서울시는 개입 여부를 결정할 게 아니라 사업지연으로 인한 실패의 책임을 져야하는 주체"라고 꼬집었다.
박근혜 정부 출범을 전후해 코레일이 공영개발로의 전환을 통해 정부가 개입할 여지를 만들려 했으나 좌절됐다. 정치권에서도 정부 개입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민간 개발 사업에 대한 불개입 원칙을 내세우며 정부도 수수방관했다.
◆초대형 악재에 부동산 시장 직격탄= 부도의 파장은 전방위적일 것으로 보인다. 일단 출자사들간의 책임 공방과정에서 줄소송전으로 비화될 게 뻔하다. 코레일과 롯데관광은 부도에 앞서 이미 소송을 위한 법률 검토에 착수한 상황이다.
서부이촌동 주민들도 서울시와 코레일에 대한 소송을 준비 중이다. 11개 구역 주민 연합 관계자는 "서울시는 통합개발 추진에 대한 책임을, 코레일은 대주주로서 사업을 잘 못 이끈 책임을 져야 한다"며 "법무법인에 소송 자문을 의뢰한 상태"라고 말했다. 주민들은 보상 이후 이사갈 것에 대비해 대출금을 빌려 대거 하우스푸어 신세에 몰린 것으로 알려졌다.
코레일은 사업비를 날린 책임을 따지기 위한 감사가 줄줄이 이어질 수밖에 없고 주주사로 참여한 롯데관광개발과 삼성물산, 푸르덴셜 등 금융투자자들도 투자실패의 책임규명이 뒤따를 전망이다. 자본금 50억원을 훌쩍 뛰어넘는 1700여억원을 투자한 롯데관광도 파산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부도 위기가 전해지면서 서부이촌동 부동산 시세는 가파르게 하락세를 타고 있다. 국민은행 통계에 따르면 용산구의 집값은 올들어 0.9% 하락했다. 서울 평균 하락률(0.6%)를 훨씬 웃도는 수준이다. 경매시장에서도 서부이촌동 아파트 낙찰가는 고점 시세 대비 절반 이하로 떨어진 상황이다.
김창익 기자 wind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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