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는 사상 최악의 암흑기를 보내고 있다. 성적은 4년 연속 하위권. 희망은 올 시즌도 보이지 않는다. 에이스 류현진의 메이저리그 이적과 양훈의 군 입대로 전력이 크게 낮아졌다.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서 노렸던 이진영, 정성훈(이상 LG), 김주찬(KIA) 등의 영입도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한화는 전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해태 왕조의 DNA를 이식했다. 2004년을 끝으로 지휘봉을 내려놓은 김응룡 감독에게 사령탑을 맡겼다. 김성한, 이종범 등 해태를 상징했던 코치들도 함께 데려왔다. 이들에게 한화가 기대하는 요소는 경험. 김 감독은 해태와 삼성에서 총 10차례 우승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그 저력으로 선수단이 재건되길 희망한다. 맡긴 임기는 2년. 한화에겐 무척 소중한 시간이다. 송진우, 정민철, 장종훈, 한용덕 등 한화 레전드 코치들이 차기감독으로 지도자 수업을 받을 시간을 벌어줬다. 사실 이들에게 현 전력의 선수단은 독이 든 성배나 다름없다.
한화는 올 시즌 외국인선수 구성에서 데니 바티스타와 재계약을 택했다. 당연한 조치다. 지난 시즌 선발로 전환한 이후 10경기에서 56이닝을 책임지며 평균자책점 2.41을 기록했다. 148.9km의 직구 평균구속을 앞세워 67개의 삼진을 잡아냈는데 피안타율은 1할8푼9리에 불과했다. 한화는 다른 한 자리를 왼손 선발투수로 채웠다. 입단부터 화제를 모은 대나 이브랜드다.
대나 이브랜드
2011년부터 몇몇 한국구단들은 메이저리그 경력이 화려한 왼손 선발투수 영입에 박차를 가했다. 올리버 페레즈, 로스 올렌도프, 자크 듀크, 이브랜드 등이다. 한화는 적잖은 경쟁 끝에 이브랜드를 데려왔다. 대다수 감독들은 외국인선수 영입 요청 시 크게 다섯 가지를 중시한다. ▲젊은 나이 ▲좋은 체격조건 ▲화려한 메이저리그 ▲평균구속 145km를 상회하는 강속구와 확실한 변화구 ▲왼손투수 등이다. 현실적으로 조건은 모두 충족되기 어렵다.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역시 같은 조건의 투수 영입을 희망하는 까닭이다.
대상자가 나오더라도 영입은 쉽지 않다. 일본 구단과 머니게임이 불가피한 까닭. 최근 한국무대를 누빈 외국인 왼손투수들을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다. 벤자민 주키치(LG)와 밴 헤켄(넥센)은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선발투수로 염두에 두지 않던 선수였다. 쉐인 유먼(롯데)이 마이너리그에 뛴 마지막 시즌도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성은 2011년 겨울 외국인선수 후보로 두 명을 리스트 업 했다. 미치 탈보트(마이애미)와 에릭 스털츠(샌디에이고). 류중일 감독의 선택은 탈보트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스털츠는 33세로 나이가 많았다. 메이저리그 경력은 5년간 통산 5승에 그쳤고, 직구 평균구속 역시 142.5km로 아주 빠른 편이 아니었다.
이브랜드는 30세의 젊은 나이에도 화려한 빅 리그 경험을 갖췄다. 22세이던 2005년 밀워키에서 메이저리거로 거듭났고, 이후 8시즌을 뛰었다. 전성기는 오클랜드 소속이던 2008년. 29경기에 선발 등판, 168이닝 동안 9승 9패 평균자책점 4.34을 남겼다. 2009년 이후로는 5개 팀을 옮겨 다니며 저니맨이 됐다. 메이저리거로서의 유통기한이 지난 셈이다. 빅 리그 통산 성적은 61경기(392.2이닝) 19승 25패 평균자책점 5.46. 마이너리그는 트리플A에서 7시즌 동안 92경기에 선발 등판해 541.2이닝을 소화하며 평균자책점 3.92를 기록했다.
이브랜드는 유망주 시절부터 타자를 상대하는 요령이 빼어나단 평을 받았다. 고른 좌우 타자 상대 성적에 땅볼유도가 수준급으로 알려졌다. 장타를 잘 내주지 않는단 호평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빅 리그 투수로는 빠르지 않은 직구 평균 구속(143.5km)과 낮은 탈삼진 비율(9이닝 당 탈삼진 5.87) 탓에 4~5선발 감으로 평가됐다.
그가 아시아리그 구단들의 관심대상으로 떠오른 건 2011년부터다. 이브랜드는 LA 다저스 산하 트리플A 앨버커키에서 25경기에 선발 등판해 154이닝을 던지며 12승 8패 평균자책점 4.38을 기록했다. 퍼시픽코스트(이하 PCL)리그는 타자구장이 많다. 앨버커키 또한 다르지 않다.
이브랜드는 앨버커키에서 변종직구(투심 패스트볼, 컷 패스트볼, 싱커)를 앞세워 땅볼타구를 많이 유도했다. 그해 땅볼/뜬공 비율은 2.03이었다. 장타도 많이 허용하지 않았다. 내준 홈런은 11개에 불과했다.
다저스는 이브랜드를 곧 메이저리그로 불러들였다. 이브랜드는 5경기에 선발 등판, 3승 2패 평균자책점 3.03으로 호투했다. 시즌 뒤 다저스는 재계약을 포기했다. 141.4km까지 떨어진 직구 평균구속과 변변치 않은 변화구 구사로는 선발투수로 롱런하기 힘들 것이란 판단이었다.
이브랜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선발투수진에 구멍이 생긴 볼티모어에 둥지를 텄다. 그리고 5월 11일 다시 메이저리그를 밟았다. 하지만 등판한 14경기 가운데 선발은 2경기에 그쳤다. 더구나 7월 13일 볼티모어는 이브랜드에게 마이너리그 행을 통보했다. 이브랜드는 마이너리그 노포크에서 14경기 선발 등판, 5승 4패 평균자책점 2.79로 호투했다. 충분히 재승격이 가능한 성적. 그러나 볼티모어는 로스터가 40인으로 확장된 9월에도 그를 부르지 않았다. 한국 행은 이 같은 철저한 외면 속에서 굳어진 듯 보인다.
②편에서 계속
김성훈 해외야구 통신원
이종길 기자 leem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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