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영신 기자, 조강욱 기자, 이지은 기자] 최근 엔저 현상이 지속되면서 기업들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엔화대출을 받은 기업들은 환차익으로 웃는 반면, 일본과 거래하는 수출기업은 결제대금 가치가 떨어져 울상을 짓고 있다.
◆ 엔화대출, 환차익에 웃고 = #. 발전설비용 부품을 생산하는 창원의 A기업은 지난해 4월부터 6월까지 3개월간 국내 한 시중은행으로부터 8050만 엔의 일본 엔화대출을 받았다. 엔화대출 당시 환율은 100엔당 1380원∼1440원. 대출금을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11억3000여만 원. A기업은 올 들어 엔화대출금을 전액 중도 상환했다. 상환 당시 원ㆍ엔 환율은 1186원. 엔화가 급격하게 떨어지면서 이 업체는 1억7000여만 원의 환차익을 거뒀다.
#. 경기도에 위치한 B사는 지난 2011년10월 C은행으로부터 30억 엔을 시설자금용으로 대출받았다. 당시 환율은 100엔당 1485원으로 한화 기준으로는 약 440억 원 수준. 하지만 엔화가 곤두박질치면서 22일 현재 B사의 대출금은 354억 원(원ㆍ엔 환율 1181원 적용)으로 90억 원 넘게 줄었다. B사는 중도상환 수수료를 감수하고 엔화대출을 갚을 지 여부를 고민 중이다.
가파른 엔저(엔低)로 엔화대출을 받은 일부 국내 기업들이 상당 규모의 환차익을 보고 있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이후 엔화가치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엔화대출을 받은 일부 중소ㆍ중견 기업들이 예상치 못했던 환차익을 거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기업들은 대출금을 중도 상환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엔화가 크게 떨어지면서 엔화대출에 대한 문의는 물론 기존 대출을 받은 기업들은 상환에 대한 문의도 많다"며 "다만 추가로 더 떨어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어 아직은 관망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엔화대출을 받은 기업들이 이를 만기 전에 갚으면 중도상환수수료가 발생하지만 최근 엔화가치의 하락을 감안하면 상환 수수료는 큰 걸림돌이 안 된다.100엔당 원화 환율은 지난해 말 1238.3원으로 2011년 말(1481.4원)에 비해 20% 가까이 떨어져있다.
그러나 이 같은 엔저가 당장의 엔화대출 증가세로 이어지지는 않는 분위기다. 과거 엔고로 인해 곤혹을 치른 경험이 있는데다, 당국도 신규 엔화대출에 제동을 걸고 있기 때문.
실제 엔화대출 규모는 지난 2008년 이후 매년 감소 추세다. 지난 2008년 1조6000억 엔에 달했던 엔화대출은 2010년 1조4000억 엔, 2011년 1조3000억 엔, 지난해 1조2000억 엔(11월말 기준)으로 줄었다.
◆ 日 수출, 대금하락에 울고 = #. 경기도 안산에서 일본기업과 거래하는 D 금형업체는 올 들어서만 수천만원의 손해를 봤다. 결제대금을 엔화로 받고 있는 D사가 최근 3개월간 본 손해만 2억원이다. 이는 당기순이익의 10%에 달한다. 이 업체는 몇 년 전 금융권 환헤지 상품인 '키코(KIKO)'에 크게 데여 따로 환헤지를 해놓지 않았다. 엔저로 가격경쟁력도 잃었다. 며칠 전 거래기업에 납품 가격대를 제시했더니 "일본 업체와 크게 차이가 안 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원ㆍ엔 환율이 최근 20% 가까이 떨어지면서 수출기업에 비상이 걸렸다. 특히 거래대금을 엔화로 받는 수출기업이나 해외에서 일본기업과 경쟁하는 중소 부품업체들의 경우 엔저(엔低)의 타격을 실감하고 있다. 중소 수출업체의 경우 환율 완충장치가 없어 엔저 리스크에 그대로 노출돼 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일본 아베 정부의 양적완화와 이에 따른 엔저로 한국산 제품의 수출 전선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실제 1년 전인 지난해 1월 2일 100엔당 원화환율은 1503원대였으나 이달 초 1174원 선까지 떨어졌다. 1년 전에 일본에 1억 엔어치 물품을 팔아 15억 원을 받은 수출기업이 지금은 수출대금으로 12억 원도 못 받는다는 얘기다.
대부분의 중소수출업체들은 환 리스크에 속수무책이다. 대기업들과 달리 환 리스크 회피 방법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엔화로 대금을 받는 일본 수출 기업들은 엔화가치가 추가로 떨어질 것을 우려해 거래대금으로 엔화를 받는 즉시 외환시장에 내다팔기 바쁘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최근 112개 수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전체의 88.8%가 최근 원화값 상승으로 수출에 부정적 영향을 받고 있다고 답했다. 환율 변동으로 올해 수출이 감소할 것으로 내다본 비중은 40.5%에 달했다. 조사대상의 65.1%는 사업 여건상 환리스크 관리를 전혀 못 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수출규모 50만 달러 미만 기업의 경우 이 비율은 70%에 달했다.
정부와 금융권도 대책을 마련하고 나섰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전일 위기관리대책회의에서 "중소기업은 환율 변동 위험에 취약하다"며 "기업들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조치하라"고 지시했다.
은행권도 중소업체에 대한 유동성공급, 환율 컨설팅 등 지원에 나섰다. 시중은행 여신담당 관계자는 "엔저 취약 기업을 우선 파악해 대응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조영신 기자 ascho@
조강욱 기자 jomarok@
이지은 기자 leez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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