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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의 사생활-1장 동묘(東廟) 부근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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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의 사생활-1장 동묘(東廟) 부근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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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자고 한 개똥철학이었지만 동철의 말 속엔 깊은 피로가 묻어있었다. 삼십대 중반의 나이란 청춘의 황혼기여서 가만히 있어도 피곤한 나이였다. 늘 웃고 떠드는 그였지만 그의 속에도 남모를 외로움이 있을 것이었다.
‘망명정부라니....’
그렇지 않아도 하림 역시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들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이미 길을 잃었다는 생각이 든 것이 오래 전이었다. 혜경이와 결혼한다 하여 희망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니, 요즘 들어 혜경이 자신부터가 더 힘들어하고 있었다.
언젠가 어떤 선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인생에는 리바이벌이란 게 없어. 일수불퇴야.’
그리곤 그는 외항선을 타고 어디론가 흔적 없이 떠나버렸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마다가스카른가 어딘가 하는 곳에서 그곳 여자와 결혼해 작은 한국식 국수집을 차리고 살고 있다고 했다. 80년대 학번인 그는 자신의 청춘을 낭비했다고 말했다. 자기 친구 중에는 그 시절 몸에 불을 지르고 교내 옥상에서 떨어져 죽은 사람도 있으니, 살아남은 자는 언제나 불행할 수밖에 없을 거라고 했다. 세상은 바뀌었지만 그들은 바뀐 세상에서도 밀려나 괴로운 자신의 짐을 혼자 지고 어딘가에서 힘겹게 살아가고 있을 터였다.
돌아오지 않는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 그들은 얼마나 불행한가.
하림은 잠자코 술잔을 들며 생각했다.
한때 그 역시 그 선배의 영향을 받아 세상이 바뀔 거라고, 아니 바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남몰래 그 선배들이 읽었다는 불온서적을 읽었다. 러시아의 혁명가들과 중국의 혁명가들, 눈벌판을 헤치고 얼음 강을 건너며, 오로지 혁명을 위해, 위대한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살아갔던 사람들.
이제 그런 세상은 없다. 단결할 만국의 노동자도 없으며, 새벽별을 바라보며 산을 기어오르던 남부군의 세상도 없다. 거리를 뜨겁게 달구었던 짱돌과 화염병과 최루탄의 눈물겨운 현장도 없다. 잠시 등장했던 촛불도 꺼진 지 오래였다. 모든 것은 조용히, 아주 조용히 자취를 감추었다. 남은 것은 정신적 폐허 위에 공허하게 흔들어대는 싸이의 말춤 밖에 없었다.
동철은 안경을 고쳐 쓰며 계속해서 말하고 있었다.
“언젠가 상해로 놀러갔다가 임시정부 청사 있던 곳에 들렀지. 우리나라 사람들이 버글거리며 찾는 곳이지. 좁고 비좁은 계단을 올라가면 김구 선생 계시던 방도 있고, 탁자가 놓인 회의실도 있어. 그리고 벽엔 흑백 사진들이 걸려 있지. 당시 우리나라 망명객들의 사진 말이야. 그런데 그 사진 유리에 오버랩 된 나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나는 아, 싶었어. 사진 속의 그 분들의 얼굴에 비해 형편없이 이지러지고, 비굴한 유리에 비친 내 얼굴. 순간 뭐랄까. 잘난 독립국 대한민국의 잘난 후손 황동철이 겨우 이 얼굴인가 싶었다구. 순간, 와락 눈물이 쏟아지려구 했지 뭐냐.”
그래서 생각해 냈다는 것이 망명정부란다.
그런데 어디에다 그런 망명정부를 세운다는 말인가.
달라이 라마 사는 동네 곁에다....? 내 마음의 망명정부....?
후후.
하림은 혼자 속으로 웃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림은 왠지 마음 한쪽이 바람이 지나가는 것처럼 허전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보면 지금 그들은 저마다 망명정부를 세우고 있는 지도 몰랐다.
문득, 혜경이 미장원 이층에 있는 ‘영산 철학원’ 영감이 떠올랐다.






글 김영현/그림 박건웅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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