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에서 10시즌 가량을 풀타임으로 보내면 야구를 보는 시각은 한층 넓어진다. 통산 1천 안타까지 넘는다면 타석에서의 준비와 투수를 상대하는 요령도 함께 터득한다. 이쯤 되면 타격 전문가라고 불릴 만 하다.
글쓴이는 타자 평가에서 집단을 둘로 나눈다. 1천 경기 이상 출전해 1천 안타 이상을 친 타자와 그렇지 못한 타자다. 간혹 예외의 경우도 발견되나 기준 달성 여부는 큰 차이를 보인다. 타격에 대한 이해의 깊이가 특히 그렇다.
톱타자는 출루가 최우선이나 타석에선 투수에게 부담을 주기 어렵다. 짜증나고 피곤하게 하는 정도다. 투수들은 장타력 갖춘 타자를 훨씬 부담스러워한다. 타율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상대를 얼마나 압박할 수 있느냐가 훨씬 중요하다.
파워를 겸비한 톱타자는 보기 드물다. 9개 구단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컨택 능력이 빼어난 타자 혹은 도루 능력을 겸비한 선수를 1번에 배치한다. 이 정도면 불문율이다.
톱타자의 대부분은 3할대 타율과 4할대 출루율, 30도루 이상을 기록하지 못한다. 메이저리그는 어떨까. 역사상 최고의 리드오프로 인정받는 리키 핸더슨은 한 시즌 평균 홈런 수가 11개나 된다. 도루는 50개를 넘어선다.
그래디 사이즈모어(클리블랜드), 헨리 라미레즈(LA 다저스), 호세 레이예스(토론토) 등의 한 시즌 평균 홈런도 15개를 넘는다. 도루는 20개 이상이다. 전성기 때는 30홈런-30도루 클럽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물론 리드오프 스타일에 정답은 없다. 한국야구 환경도 감안돼야 한다. 지난 시즌 30도루 이상을 남긴 타자 가운데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한 선수는 박용택(LG)이 유일했다.
글쓴이는 상대 투수에게 장타와 도루의 이중부담을 안겨주는 타자가 가장 위협적인 리드오프라고 생각한다. 리그 수준이 높아질수록 도루는 줄게 된다. 상대를 압박해 한 점을 뽑는 스몰볼에서 프로야구의 1번 타자들은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하지만 확실한 득점 보장이나 승리에 결정적으로 기여하려면 후속 타자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국내 많은 감독들이 작전을 많이 꺼내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타자의 타격만으로 점수를 뽑기 어려워 다양한 시도를 꾀한다. 회심의 카드가 불발되면 선수단의 분위기는 급격히 내려갈 수 있다. 리드하던 경기를 내줄 수 있다.
지난 시즌 1번 타자 대부분은 부진했다. 삼성의 배영섭을 비롯해 정근우(SK), 이종욱(두산), 이용규(KIA), 이대형(LG), 강동우(한화), 장기영(넥센) 등이다. 이름값을 한 건 롯데에서 뛰었던 김주찬(KIA)이 유일했다. 지난 시즌까지 통산 1053경기를 뛰며 1023개의 안타를 쳤다. 베테랑급 레벨에 진입했다고 볼 수 있다.
7개 구단 리드오프들이 부진했던 까닭은 무엇일까. 최근 프로야구는 팀 간 전력 차가 거의 나지 않는다. 일방적인 점수 차로 끝나는 경기는 자연스레 줄어들었다. 그 사이 한 경기에서 안타를 몰아치거나 2개 이상의 도루를 기록하는 경우는 함께 감소했다. 만만한 투수들이 그만큼 줄어들었단 의미다.
몇 년 전만 해도 각 팀들은 약 12명의 1군 투수 가운데 1~2명에게 유망주나 패전처리로 맡겼다. 최근 흐름은 많이 달라졌다. 패전처리는 거의 사라졌다. 유망주들도 전지훈련에서 돋보이지 못하면 2군을 전전한다. 팀이 가을야구 경쟁에서 일찌감치 밀려날 경우에나 뒤늦게 기회를 제공받는다.
부진의 이유는 하나 더 있다. 최근 톱타자들은 강한 타구 생산보다 툭 갖다 맞히는 데 치중한다. 땅볼을 만들어 내야안타를 만들려는 의도가 짙다. 시도는 좋다. 하지만 결과의 대부분은 만족과 다소 거리가 멀다.
한국을 대표했던 리드오프로 글쓴이는 이종범, 이병규 등을 꼽는다. 이들은 30홈런-30도루를 작성했을 만큼 파괴력과 스피드를 겸비했었다. 톱타자가 무조건 소프트할 필요는 없다. 파워풀할 경우 가치는 더 오를 수 있다. 어느덧 불문율처럼 굳어진 1번 타자의 조건. 올 시즌 새로운 변화를 기대해본다.
마해영 XTM 프로야구 해설위원
이종길 기자 leem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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