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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詩]다시 읽는 홍신선의 '마음經.3'

시계아이콘읽는 시간26초

사전 약속도 없이/부산 이가와 전북의 김가들,/누구는 동에서 오르고/누구는 서에서 뛰고/누구는 남에서 오르고/누구는 북에서 치달린다//민 대머리 지리산 반야봉이나/월출산 천황봉 정상에 가보면/동서남북에서 제각각 올라온/모두가/모든 일체를 망해먹고/빈손에 허공들이나 쥐고 웅성거린다


■인간의 마을이란 저희 좋은 사람끼리 모여든 것이 아니라, 산과 물이 나눠놓고 갈라놓은 것이다. 강원도 태백산에서 내려온 물을 서울사람도 마시고 충청 경상 전라도 사람들까지 모두 조금씩 마신다. 큰 산 아래에는 어김없이 옹기종기 모여든 고을이 있고 지리산의 이쪽과 저쪽에는 산이 험하여 자주 교통하지 못한 경상도 전라도가 있다. 선거 때가 되면 한 하늘을 같이 지고 살기 어려운 사람들처럼 멱살 쥐고 싶은 사람들로 왁자지껄해지는 지역감정이라는 것의 정체는 대개 그런 것이다. 서쪽에서도 산에 오르고 동쪽에서도 산에 오르니, 정상에선 다 땀 한 바탕 흘린 영호남이 맨정신으로 만난다. 가만히 보면 무어 다를 것 없이 세상 말아먹고 시간 비벼먹어, 빈 손 인생인 것은 마찬가지다. 미친 듯 올라왔지만 더 올라갈 데가 없어 머쓱하게 허공을 쥐어보는 잘난 척의 꼭짓점이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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