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보에 싸놓은 개똥 한 자리,/주민등록 옮기고/집 비워/피해갔다고//그 똥이 없어지나/보자기 뒤집어 털고/얼어 곱은 손으로라도 빨아야/십 년이나/이십 년/손 호호 불며 빨아야/본래 제 보자기 하나/되찾을 수 있으리.//빈 데서 빈 것을 털어내는 소리
다시 읽는 홍신선의 '마음경.2'
■ 시인은 왜 마음의 경전을 시로 쓰고자 할까. 위대한 옛 정신이 남긴 절대적인 언어들을 새롭게 설계하고 싶었을까. 아니, 그보다는 세상 도처에 널린 경전들을, 스스로의 눈을 닦음으로써 읽어내고자 하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눈만 닦으면 개똥도 경전이다. 개똥도 시에 쓰면 이토록 향기가 난다. 누군가 이사를 간 집에 들어가보니 너절한 보자기 하나에 마른 개똥을 싸서 남겨놨다. 주민등록 옮겼다고 제 개똥이 사라지나. 허허. 개똥 싼 보자기가 사라지나. 그 마음보자기 되찾으려면 이십년 찬물에 언 손 녹이며 빨아야할지 모른다. 통렬하다. '빈 데'와 '빈 것'은 통렬하다. 제 몸을 비운 데는 바로 그 빈 집이지만 제 몸을 비운 것은 바로 똥이다. 빈 집은 빌어쓰는 집이고 빈 몸은 바로 빌어쓰는 몸이기도 하다. 거기 잠깐 거주한 것은 뭔가. 바로 마음이 아닌가. 보자기에 똥을 싸놓은 그 마음.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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